새로운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 아프리카를 찾아가다? 침소봉대 (針小棒大) 코리아 에이드, 대통령 아프리카 3개국 순방

* 침소봉대  (針小棒大): 작은 일을 크게 불리어 떠벌림.



박근혜 대통령이 25일부터 다음달 1일 까지, 10박 12일 동안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를 방문한다. 전 세계를 누빈 대통령이 아직 방문하지 않은 유일한 대륙, 아프리카에 방문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외교부의 자료와 보도 내용을 봤을 때 악수하고 사진찍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순방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외교부에선 이번 순방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아프리카 순방은 대(對)아프리카 외교 강화와 전 세계 주요 권역 순방외교 마무리 차원에서 추진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번 박 대통령님의 순방을 통해 지구촌 성장의 마지막 블루오션 진출을 강화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아프리카와의 우호 협력관계를 심화,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특히, 박 대통령님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아프리카연합(AU) 특별연설을 통해 한-아프리카 관계를 다방면의 경제협력, 평화·안정 구축 협력, 그리고 문화적 교류를 포함하는 포괄적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정책비전인 '아프리카와의 포괄적 협력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이번 아프리카 방문을 통하여 정부의 새로운 대(對)아프리카 개발협력을 추진하여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여를 증대시키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번 순방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전 세계 주요 권역 순방외교 마무리
2. 아프리카 연합 특별연설
3. 새로운 아프리카 개발협력 추진
4. 기타: 대북 제재 결의안 이행 독려, 경제 교류 등



목표 1: 전 세계 주요 권역 순방외교 마무리

역대 대통령 중 아프리카에 방문했던 대통령은 전두환,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이렇게 네명이다. 최근 추세를 보았을 때, 임기 중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것이 필수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 방문 국가는 다음과 같다.

전두환 대통령: 가봉, 세네갈, 나이지리아, 케냐
노무현 대통령: 알제리, 나이지리아, 이집트
이명박 대통령: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박근혜 대통령: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목표 2: 아프리카 연합(AU) 특별연설 (전문읽기)


AU에서 연설중인 박근혜 대통령. Photo: AU

대한민국 대통령 처음으로 AU를 방문했다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한국과 아프리카의 역사적 공통 분모를 잘 활용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 연설을 했다는 점에선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 내용을 발췌해 보았다.

(...) 한 세기 전 한국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처럼 식민지배 하에 고통을 겪어야 했고, 불과 65년 전에는 민족상잔의 전쟁으로 온 국토가 폐허가 되는 참상을 경험했습니다. 
 (...) 이러한 성과는 한국인들의 힘만으로 이룩한 것은 아닙니다. 아프리카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도움과 이해, 협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거나 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역사적 질곡과 성취의 경험을 갖고 있기에 저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희망과 도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가슴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 그리고 이 과정에 한국은 아프리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프리카의 아픔과 꿈을 공유하면서 상생 호혜의 정신을 살려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첫 해 있었던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에 불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만델라를 언급하며 연설을 시작하고 뒤에도 다시 인용했던 점과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은 세계 70개국 정상이 참석했던 금세기 최대의 장례식이었다. 한국에선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아버지의 업적인 새마을운동을 지나치게 강조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특히 이곳 넬슨 만델라 홀에 서니, 인간 존엄과 평등 그리고 자유에 대한 마디바(Madiba)의 불굴의 신념을 되새기게 됩니다.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절망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던 마디바 만델라의 신념에 깊은 공감대를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 대한민국이 불굴의 신념으로 새마을운동을 일으키고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해냈듯이, 아프리카 국가들이 지향하는 원대한 목표와 열망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 한국 근대화의 토대가 되었던 '새마을운동'은 단순한 개발 운동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도록 만든 정신혁명 운동이었습니다



목표 3: 새로운 아프리카 개발협력 추진

'새로운 아프리카 개발협력 모델'로 불리는 '코리아 에이드 (Korea Aid)'는 이런 사업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부 블로그: 정책공감)






검진차량 1대, 앰뷸런스 2대, 푸드트럭 3대, 냉장트럭 1대, 영상트럭 1대, 지원차량 2대 등 총 10대의 트럭을 활용해 '찾아가는' 보건, 음식, 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이다. 이 계획 수립을 위해 무려 외교부와 코이카,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부, 현지 재외공관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사무소 등의 기관들이 협업했다고 한다. 철학도, 실리도 없이 그저 '대통령 보기 좋으셨더라' 밖에 안될 것을 만들어낸 관련부처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대의 트럭. 아마도 시범사업이겠지라고 생각하곤 있지만, 이 정도의 사업을 대통령 순방에 발맞춰 무려 '새로운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한국 개발 협력의 빈곤과, 이번 순방의 부실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를 합치면 남한 국토의 20배 가량의 면적이 된다. 인구는 남한인구의 3.2배이다. 코리아 에이드는 '아프리카' 주민들을 찾아가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이렇게 광활한 면적에 나뉘어 살고 있는 3개국 사람들에게 트럭 10대로 얼마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코리아 에이드, 푸드트럭 Photo: 청와대


후속 사업 일정을 보니 걱정이 더 많아진다.

"우리 정부(KOICA)는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 하반기까지 월 1회 빈도로 보건, 음식, 문화 분야 전 차량이 참여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사업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개별 사업도 국별 상황에 맞게 수시로 시행하는 등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할 계획입니다." (외교부 보도자료 16-322)

일단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더 자세한 설명을 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검색해 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다.  10대의 트럭을 매일같이 돌려도 성과를 내기 힘들 것 같은데, 월 1회 빈도로 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 사업의 취지와 목표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정도 수준의 사업은 어디 공모전 같은 곳에 내면 떨어질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진 27명(△이대목동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이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주민들에게 사랑의 인술을 베푸는 점은 특기할 만합니다. 이들 의료진들의 봉사정신은 코리아에이드가 성공적인 민관협력 모델로 발전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외교부 보도자료 16-322)

코리아 에이드 Photo: 청와대

한국 의료진이 아프리카 각국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것은 전혀 '특기할'만한 사실이 아니다. 이미 매년 병원 단위이나 의과대학 혹은 관련 NGO들이 의사를 파견, 아프리카 각국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에서도 의사들을 파견 보냈었다. 1968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파견의사' 제도를 운영,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한 각국에 의사를 파견했었고, 군복무 제도의 일부로 '국제협력의사제도'도 있었으나 저출산으로 인해 군 자원이 부족하다며 2013년에 폐지했다.

설령 이 이동 차량들이 움직여서 보건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해도 문제다.

이건 사실 새로운 개발협력 모델이라기 보다는 그냥 대통령 순방에 맞추어 개최한 개발협력 '이벤트' 였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2014년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 방안으로 야심차게 '밀었'다가 흐지부지된 푸드트럭이 생각나기도 한다. 전혀 새롭지도 않고, 어떤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코이카와 외교부에서 코리아 에이드를 진지하게 새로운 개발협력 모델로 생각하고 있다면, 한국 정부의 국제 개발협력은 '프레시안'에 실린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논평의 표현처럼 '명백한 후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논평보기: [서리풀 논평]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생각) 논평의 일부를 옮겨보았다.

순회 진료를 해서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개발도상국의 보건을 향상하는 방법은 이미 국제 사회가 합의한 방법들이 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늦게 출발한 한국의 보건 원조가 국제 표준을 따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온 것은 확실하다.
초기에는 건물과 시설, 장비 등 외형에 치중했으나 점점 더 소프트웨어의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이 첫 번째 노력. 개발 협력인 한, 글로벌 스탠다드가 그쪽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보건의료 체계와 시스템을 강화하는 각 나라의 노력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조 영역이 되었다. 이번 코리아 에이드는 그런 노력을 단숨에 무력화했고, 그런 의미에서 명백한 후퇴다.


지금 대통령은 우간다에 있다. 대북제재와 새마을 운동 관련해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정부에서 만든 홍보책자 같은 내용이라 읽을 거리가 없다. 한국 언론이 아프리카에서 깊이 있는 취재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안되는 것 같아 아쉽다.

동포 간담회에 참석한 대통령 Photo: 청와대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짚고 마무리 하려고 한다. 1986년부터 근 30년동안 우간다 대통령을 하고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는 누가 뭐래도 '독재자'이다. 특정 민족을 탄압하고 학살했으며, 동성애자들을 박해하고 있다. 그런 독재자가 아무리 북한 제재하고, 새마을 운동 배우고 싶다고 할지라도, 그런 독재자 옆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같이 사진찍고, 협력을 약속하는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한국이(혹은 대통령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채운 '코리아 에이드'같은 對아프리카 외교를 통해선 한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포괄적 파트너도 되기 어려울 것이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도 힘들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결같이 아프리카를 '블루오션'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지독한 클리셰부터 폐기해야한다. 아프리카에 줄을 대려는 외교전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이 외교전에서 아프리카 정상들은 순진하게 '수탈'당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국익을 (혹은 대통령 자신의 이익을) 영리하게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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