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다: 진스터(Zinester)


어릴 적 방학 숙제로 '가족 잡지 만들기' 같은 것을 했었다. 색깔있는 도화지에 가족 사진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을 붙이고, 삐뚤 빼뚤 기사를 써서 만들곤 했는데, 심각한 내용들, 유명인의 내용들로 가득한 신문, 잡지와 달리 사소한 이야기들로 가득채웠던 기억이 난다.

키베라에도 그곳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는 잡지가 있다. 진스터(Zinester)라고 불리는 NGO의 이야기이다.

사진가이자 디자이너인 해리슨 테인(Harrison Thane)과 톰 그라스(Tom Grass)가 시작한 진스터는 시민 저널리즘과 DIY(do-it-yourself) 기술을 결합하여, 그동안 주류 미디어에서 소외되었던 키베라의 보통 사람들이 잡지를 만들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키베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다고 불리는 슬럼 중 하나이다. 규모도 크고, 정부의 통제력도 잘 미치지 않는 곳이라 인구도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인데, 조사를 하는 사람과, '키베라'의 영역을 어디까지로 봐야하는지에 따라 15만 명, 25만 명이 산다고 추산되기도 하고, 많게는 50만 명, 1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긴 커녕, 종종 키베라에 산다고 추산되는 사람 수 분의 1에도 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Zinster

그 엄청난 규모만큼, 키베라는 각종 미디어와 학계의 관심을 꾸준히 받아왔지만,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편집될 것인지는 그들이 손에 있지 않았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소외되어왔다. 진스터는 여기에 주목했다.

NGO와 개발단체들은 그들이 방문하는 공동체 안의 여성과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고 불평하곤 한다. 극단적인 예로 여자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거의 장려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여자 아이들에겐 주체적인 시민이 가져야할 자질을 얻을 기회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NGO’s and development agencies often complain that they are unable to hear the voices of women and children in the communities they visit. In extreme cases girls’ rights to education are barely encouraged so there is limited scope for their ever acquiring the skills necessary to become active citizens. (Zinster: What We Do 中)

Zinsters! ⓒZinester

진스터는 작년에서야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인(Jane) 목사가 운영하는 Wings of Life 학교에서 3시간 분량 워크숍을 6회 진행했을 뿐이고 앞으로 프로젝트를 확장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은 인상깊다.

Wings of Life 학교의 제인 목사와 학생들 ⓒZinester 

진스터를 이끌고 있는 해리슨과 톰도 이때까지만 해도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었던 것 같다. 해리슨은 The Lake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 장애물은 시범 워크숍을 위한 자금 부족이었어요. 저는 물 새는 텐트에서 살았구요, 톰은 바퀴없는 낡은 밴에서 살았어요. 우리는 매일 밤 난로에 요리를 했어야 했구요. 
워크숍의 매 순간은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죠.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비디오가 인터넷과 킥스타터(Kickstarter-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대박쳤을 때 정말 놀랐죠.

 The first challenge we faced was lack of $$ for the pilot. I was living in a leaky old tent and Tom was in an old van with no wheels, we cooked every night on an open fire.
We loved every moment of the workshop and the crazy stories the kids were coming up with but we were still unsure if the project would be successful so it was a great surprise when we released the video online that it went viral along with the kickstarter. (The Lake, CHOCOLATE CITY / ZINESTER)



진스터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은 사진 찍기, 잡지 디자인하기, 편집하기, 기업가 정신 등을 배운다. ⓒZinester

해리슨은 진스터가 지향하는 잡지는 '저품질 펑크 스타일' 잡지라고 했다. 느껴지지 않는가? ⓒZinester

'요즘 시대에 무슨 종이 잡지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키베라는 이미 이 잡지들을 온라인으로 발행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키베라 골목 곳곳에 인터넷 카페(한국의 PC방)가 있고, 스캐너가 달린 복합기가 구비되어 있어서 진스터들이 만드는 잡지는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으로 발행 가능하다.


아래는 진스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진스터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으로 출판본을 구매할 수도 있다.


진스터의 잡지 '초콜릿 도시' ⓒZinester












번역: 고아

1) 이름이 뭐에요?
제 이름은 이라드 입니다.

2) 몇살이에요?
열 세살 입니다.

3) 가족이 있나요?
네, 가족이 있긴 한데, 그들은 저를 집에 들이길 원치 않아요. 

4) 지금은 어디 사나요?
길이나 둑 근처에 살아요.

5) 뭘 먹나요?
뭐든 찾는걸 먹죠.

6) 잠은 어디서 자요?
박스나 쓰레기더미에서 자요.

7) 어떤게 힘들어요?
가끔 비가 제 머리랑 몸에 떨어져요. 그럼 감기에 걸려요.
가끔은 뭔가 먹고 배탈이 나기도 해요.
가끔은 도둑들이 경찰을 피해 제 뒤에 숨어요, 경찰은 저를 경찰서에 데려가요.




번역: 키베라 둑

키베라엔 둑이 많다. 어떤 건 깨끗하고 어떤건 안 깨끗하다. 물은 색깔이 다르다. 그 색깔은 검정색이다. 키베라 슬럼에 사는 사람들은 둑에다가 쓰레기를 버린다. 그리고 둑은 더러워진다. 키베라 사람들은 이것을 더러운 둑 혹은 댐무(dammu) 라고 부른다. 비가 오면 물이 둑 밖으로 넘쳐서 집으로 들이친다. 둑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홍수를 겪는다.










초기의 성공만 가지고 장기적인 성공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렵지만, 진스터는 장기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되찾고 싶어 하는 키베라 어린이들, 키베라 사람들의 욕구와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은 키베라 밖 사람들의 욕구가 그 성공을 이끌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꽤나 늘었고, 소셜 미디어는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더 이상 옛날처럼 인류학자가, 국제 구호 NGO가 '아프리카 이야기'를 독점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제 구호 NGO들은 정해진 문법이라도 있는 듯 틀에 박힌 '아프리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그런 '아프리카 이야기'에 지쳤고, 의문이 들기 시작했으며 진스터의 '초콜릿 도시' 같은 미디어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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