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 대학교 졸업식 모습 Photo: University of Cape Town Youtube Page |
아프리카 정치, 시사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African Arguments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아프리카학에 '아프리카인'들은 어디에 있나? (Where is the ‘African’ in African Studies?)"라는 제목의 글인데, 글쓴이는 아프리카인들의 학문적 기여가 대체로 무시되고 혹은 의도적으로 침묵당하였지만 그럼에도 아프리카인들은 항상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롭텔 니아자이 페일리(Robtel Neajai Pailey)이다.
롭텔은 라이베리아 출신의 학자, 활동가, 동화책 작가이며, 지금은 옥스포드 대학교 국제 이주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롭텔은 미국의 Howard 대학교에서 아프리카학과 영문학을 공부했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아프리카학 석사를 했으며, 역시 영국의 SOAS에서 개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외에도 가나와 남아프리카의 대학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소개할 롭텔의 글은 북미-아프리카-유럽의 학계를 모두 경험한, 그런 특별한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롭텔은 우선 '아프리카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중 국적과 재화의 초국적 이동이 전성기를 맞은 이 시대에 '아프리카인'은 무엇을 말하는 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아프리카인'은 우선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거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심리적으로 아프리카 대륙과 연결되어있고, 이 대륙의 변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인'에 대해 아주 근본적이고도 깔끔한 정의를 내린 후, '아프리카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설명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정의에 비해 특이했다. 롭텔에게 '아프리카학'은 인식론적, 방법론적, 이론적으로 아프리카 연구를 하는 것에 관해서 깊이 있게 살피는 것이고, 그러므로 아프리카와 이 연구소의 사람들은 연구의 주체가 아니라 주제라고 주장했다. 결국 아프리카학은,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행위와 행위자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아프리카학에는 이런 것도 포함된다는 의도에서 말한 것 같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학계를 통해 아프리카를 둘러싼 국제적 맥락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롭텔은 아프리카학에 대해 이런 진단을 내린다.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아프리카학은 아직 곡해와 균질화(homogenisation), 본질주의가 만연한 식민지배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초기 저작과 교육은 식민지 확장, 선교, 인류학적 민족지학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최근의 학계는 마치 아프리카는 백지상태이고 지식인도 없고, 스스로 생산한 지식도 없는 것 처럼 치부하고선, 스스로를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싼 21세기 쟁탈전에서의 권위자로 묘사하고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이런 가정은 문제일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두번째 문단에서 '스스로를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싼 21세기 쟁탈전에서의 권위자로 묘사하고 있다'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아프리카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연구하고 경험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우리 정부, 우리 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뜻하고 있다. 소위말하는 이 '전문가'들이 얼마나 아프리카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산되는 '아프리카'에 관한 글들을 읽다보면, 소위 '전문가'라며 글을 쓰는 사람들 중 다수가 왜곡된 아프리카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아마도 유럽/북미에서의 상황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페미니스트 학자 아미나 마마(Amina Mama)는 아프리카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프리카인이냐 아프리카인이 아니냐에서 오는 인식론적 문제만큼이나 민족적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마는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과 투쟁, 그리고 그들의 문제를 존중하는 아프리카학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마가 보기엔 미국의 아프리카니스트들은 아프리카 학자들의 학문적 문제제기를 묵살하는 방식으로 식민주의적 위계질서를 강화하는데 연루되어왔다. 마마는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복잡한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개념과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아프리카연구의 외부화"를 비판했다. 마마는 편집권을 가진 자들의 통제에 의해 국제적 출판산업에서 쫓겨난 아프리카 학자들이 전통 학계 밖에서 수많은 지식을 생산해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마의 이러한 주장은 올해 발행된 한 논문에서 사실로 확인된다.
마마와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 처럼, 아프리카에 대한 출판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종종 폄하되고 무시당했다. 이건은 최근 한 논문에서 밝혀진 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Briggs, R. and Weathers, S. (2016) Gender and Location in African Politics Scholarship: The other white man's berden? African Affaris) 논문은 21년동안(1993-2003) 아프리카 학자들의 주요 아프리카학 저널(African Affairs, Journal of Modern African Studies)에서의 논문 게재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결과를 내 놓았다. 논문의 두 저자는 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 두 저널에 아프리카학자들의 논문 투고는 증가했지만, 거절당한 비율이 상당히 높아 결국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유럽 중심의 주요 저널들에서는 아프리카 학자들이 차별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롭텔의 글에선 아프리카인들이 주도하는 출판물들에 대한 언급도 있다. 마마가 창간한 Feminist Africa, 은완도 아체베(Nwando Achebe)가 창간한 Journal of West African History, 그리고 아프리카 사회과학 진흥 협회(Council for the Development of Social Science Research in Africa, CODESRIA)가 시작한 몇몇 플래폼 등을 대안적 플랫폼으로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이 북미/유럽에 기반을 둔 출판인들, 편집자들, 그리고 비평가들이 만들어내는 인용과 출판의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는 한계도 지적하고 있다.
아프리카학계의 과거와 현재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살핀 롭텔은 아프리카학계에 '아프리카인'들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롭텔은 북미(Howard University), 아프리카(University of Ghana, University of Cape Town), 유럽(Oxford University)에서 아프리카를 공부한 라이베리안으로서 아프리카학에서의 '아프리카인'들의 위치가 "지식 시장에서의 권력구도, 각 기관의 학풍, 각 기관별 교육관이나 방법론,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약속 등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00년에서 2004년까지, Howard 대학교의 아프리카학 학부생으로서 나는 건전하고 진보인 아프리카학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거기서 케냐 학자 존 음비티(John Mbiti)와 알리 마주리(Ali Mazuri), 세네갈 출신 이집트학자 셰이크 안타 디오프(Cheikh Anta Diop) 등을 공부했다. 디아스포라 학자들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었다. 예를들면 가이아나인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의 "유럽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저개발시켰나", 라이베리아 출신의 에드워드 윌몬 블라이든(Edward Wilmot Blyden), 마르티니크인 혁명가 에메 쎄제르(Aimé Césaire)와 프란쯔 파농(Frantz Fanon) 등을 배웠다.
Howard 대학교는 아프리카학 박사과정을 처음으로 설립했고, 지금은 학사와 석사 과정도 제공하고 있다. Howard 대학교는 나에게 아프리카 출신 학자들과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학자들을 통해 확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게 해주었고, 3분의 2 이상의 교수들이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2002년 레곤(Legon)의 가나 대학교를 다닐 땐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학문은 그 역사와 정치, 그리고 '발전'과정 이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레곤의 아프리카연구소에서 나는 아프리카인들에게서 드라마와 소설, 시각예술, 춤 등을 배울 수 있었고, 아프리카의 미학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케이프타운 대학에선 아프리카학 센터가 제공하는 대학원 과정을 다녔다. 그곳에선 파농, 디옵,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등의 탈 식민주의 담론을 이어받은 아프리카인 학자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옥스포드 대학교의 아프리카학 석사과정은 2005년 설립되었다. 옥스포드는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었다. 3분의 1 정도의 교수들이 아프리카 출신이었고, 학풍은 주로 유럽학자들이 이끌었던 인류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콩고의 무딤베(V.S.Mudimbe), 우간다의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 나이지리아의 오옌론케 오예우미(Oyenronke Oyewumi) 등의 업적도 중시하려고 하는 시도도 느낄 수 있었다.
롭텔은 이렇게 세 대륙에서의 학문적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학계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위치는 국제정치와 지식생산에서의 권력구도가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렇게 아프리카 학계에서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아프리카 학자와 非 아프리카학자 모두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겸손하게 만들며, 아프리카 대륙과 그 사람들에 대해 더 책임감 있게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아프리카학을 공부하다보면 유명한 아프리카 연구자들이 대부분 백인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롭텔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비단 아프리카 출신 학자들만의 숫자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아프리카'가 없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를 연구하고 있지만, 연구자들은 서구식 학문 훈련을 받고서 유럽과 북미의 이론들, 유럽과 북미의 언어들을 이용하여 아프리카를 담아내고 있다. 과연 이렇게 해서 아프리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학이 진정으로 아프리카의 문제에 기여하기 위해선 '아프리카'를 위한 아프리카의 이론과 언어를 정립하는 일부터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