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아프리카? '아프리카연합 여권' 첫 발급.

그동안 지역 통합의 '좋은 예'로 여겨졌던 유럽연합이 브렉시트로 인해 어수선한 상황에 놓이게 된 반면, 아프리카연합은 통합을 위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얼마전 끝난 제 27회 아프리카연합 정상 회의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연합 여권'이 발급되었고, 32년전 서사하라의 지위 인정 문제로 AU를 탈퇴한 모로코가 재가입 의사를 밝혀왔다. 오늘 할 이야기는 '아프리카연합 여권'과 아프리카인들의 아프리카 내 이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 27회 아프리카연합 정상회의 Photo: AU

르완다 키갈리에서 개최된 지난 정상회담에서 '아프리카연합 여권'을 받은 사람은 현재 아프리카연합 의장(순환직)을 맡고 있는 차드 대통령 이드리스 데비와 회의 개최국인 르완다의 대통령 폴 카가메이다. 대통령들이라서 사실 여권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이 여권을 소지한 사람은 아프리카연합 54개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여권에는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스와힐리어가 표기되어 있고, 앞으로 회원국들은 각자 발급 기준을 정해 국가 수장, 고위 외교관, 고위 공무원부터 순차적으로 발급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유럽연합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럽연합 여권의 시스템을 많이 벤치마킹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AU 이사회 은코나카나 들라미니 주마 의장은 AU가 "회원국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자국의 정책에 따라 여권을 발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권을 펼쳐보이는 카가메 대통령(좌)와 데비 대통령(우) Photo: AU


(관용) 여권 표지 모습. 5개 언어가 표기되어있다. Photo: BBC Swahili


이번 여권 발급은 2013년 아프리카연합이 발표한 '아젠다 2063'(Agenda 2063)의 달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아젠다 2063에서 제시한 목표들 중 두가지 목표가 이 여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목표. 범아프리카주의 이념과 아프리카 르네상스 비전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으로 연합되고 통합된 대륙 (An integrated continent, politically united, based on the ideals of Pan-Africanism and the vision of Africa's Renaissance)

일곱번째 목표. 국제사회의 행위자이자 파트너로서 강력하고 연합되며, 위기대응력과 영향력을 지닌 아프리카'(African as a strong, united resilient and influential global player and partner)

위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아젠다 2063'은 2018년까지 모든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모든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자요건을 폐지하고, AU회원국이 '아프리카 여권'을 도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Agenda 2063 72(I): Introduce an African Passport, issued by Member States, capitalising on the global migration towards e-passports, and with the abolishment of visa requirements for all African citizens in all African countries by 2018.

지난달 AU가 '아젠다 2063'이 명시하고 있는 사람과 자본, 상품 및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목표와 관련한 전자여권 도입 의제를 다음 정상회담에서 다루겠다고 발표했고, 얼마전 끝난 27회 AU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연합 여권을 선보였다. AU 부의장인 에라스투스 므웬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이슈가 AU내에서 25년동안이나 계류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연합 여권 외에도 아프리카연합 회원국들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비자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으로 아프리카 대륙 내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가장 최근엔 가나가 아프리카 연합 회원국 국민들에게 30일 방문비자를 허용한다고 발표했었다.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들의 아프리카 국가간 여행은 아직 그렇게 자유롭지 않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이 조사한바에 따르면(Africa Visa Openness Report 2016)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무비자 정책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20%에 불과하고, 25%는 도착비자를 허용하고 있으며 55%는 사전에 비자를 발급받아야만 여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지역적으로 나누어 보자면 관광산업이 발달한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대체로 비자에 대해 열린 정책을 가지고 있는 반면, 중앙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는 제한적인 비자 정책을 가지고 있다. 동아프리카지역의 부룬디,우간다, 남아프리카지역의 마다가스카, 모잠비크의 경우 아프리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열린 비자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무려 198개국 여행자에 대해 무비자나 도착비자를 허용하며 세계 비자지수(Passport Index)의 Welcoming Rank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관광대국 케냐와 탄자니아도 각각 182개국, 176개국에대해 무비자/도착비자를 허용하며 상위에 랭크되었다.

국가 경제 수준별로는 경제 수준이 높을 수록 폐쇄적 비자 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고중소득국(Upper-middle-income countries)으로 분류되는 알제리, 보츠와나, 가봉, 리비아, 모리셔스,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고소득국가(high-income countries)인 적도 기니가 비자 개방지수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국내 총 생산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적도 기니 같은 경우, 아프리카 국가 국민들에 대해 가장 폐쇄적 비자 정책을 가진 나라중 하나에 꼽힌다. 이런 경향은 불법 이민노동자에 대한 우려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중소득국중 세이셸만이 개방적인 비자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세이셸은 아프리카연합 국가 국민 전체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아프리카개발은행 'Africa Visa Openness Report 2016' 중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체로 해외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 관대한 비자정책을 가지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 국가 국민들이 해외에 갈 땐 비자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 소득 수준이 높은 셰이셸이나 모리셔스, 남아공의 국민일 경우엔 무비자로 방문하거나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많은 편이라 Global Passport Power Rank에도 중상위권에 위치해있지만 (한국은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수단, 남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에리트리아 같은 나라들은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룬디 정부는 무려 198개국에 대해 무비자/도착비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부룬디 사람들은 42개국에만서만 무비자나 도착 비자를 통한 입국이 허용된다.  

* 페이스북을 통해 '한상훈'님께서 코멘트를 주셨다. "2016년 초부터 모든 도착비자 정책을 없앴습니다. 따라서 부룬디에 들어오고자 하는 모든 외국인들은 1)본국을 관할하는 부룬디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거나, 2)부룬디 이민국장이 발급해주는 '입국허가서'를 소지하여야 합니다." // '한상훈'님의 코멘트에 따르면 부룬디는 어떤 이유로 인해 2016년 초, 비자 정책이 아주 폐쇄적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려 했지만 프랑스어와 키룬디를 몰라서 정확한 정부 공고문은 찾을 수 없었고, 다만 주미 부룬디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우간다, 탄자니아, 케냐 국민에 대해 비자가 면제된다는 언급을 한 것은 찾을 수 있었다. 위에 언급된 5개국 이외의 나라 국민들은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만 입국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따라서 위에 언급된 '부룬디'관련 내용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부룬디 대신 '마다가스카'를 넣어 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다가스카'도 Passport Index의 자료에 따르면 (Passport Index의 조사가 이루어진 시기를 기준으로) 198개국에 대해 무비자/도착비자를 허용하고 있는데, 마다가스카 여권 소지자는 49개국에서만 무비자/도착비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 최신 정보를 알려주신 '한상훈'님께 감사드립니다!

아프리카 국가 여권의 '파워'지수. 어두운 색일수록 '파워'가 약하다. 자료: Passport Index

아프리카 국가들의 '환영' 지수. '파워'지수에 비해 더 밝다. 자료: Passport Index

여권에 키스를 하는 데비 대통령. 그 옆에 서있는 사람은 AU이사회 의장 은코나카나 들라미니 주마 Photo: AU



개인적으로 두 대통령이 '아프리카 여권'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았다. 이번 통합 여권의 발급은 식민 역사의 대표적인 잔재 중 하나인 '임의로 그어진 국경선'을 없애는 작업이자 아프리카 대륙의 오랜 꿈인 '범 아프리카주의'가 실현되는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여권이 아프리카 전반에 통용되기 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도 말했듯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들은 국경 개방을 꺼릴 가능성이 높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경우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 '외국인 혐오'(Xenophobia) 범죄가 2008년 정점을 찍은 이후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안보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동아프리카공동체(EAC)의 예를 들면, EAC는 단일 여행 비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케냐, 르완다, 우간다는 이에 동참하고 있지만 부룬디와 탄자니아는 안보문제를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테러리즘, 난민문제, 마약/무기/상아 밀수 등의 문제가 아프리카 통합 여권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문제들을 극복하고 아프리카 여권이 일반 시민에게까지 보급된다고 해도, 아프리카 내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기 까지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각국 통화가 다르고, 아프리카 내 여행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도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 주요 도시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보다, 아프리카 주요 국가끼리 연결하는 비행기가 더 적다고 하니 막상 통합 여권이 있어도 이동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연합은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통합을 이뤄낼 것인지, 독립 직후 많은 정치 지도자들, 사상가들이 꿈꾸던 '범 아프리카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지, 실현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참고자료
아프리카 연합. Agenda 2063. (아프리카미래전략센터 번역)
아프리카개발은행. Africa Visa Openness Report 2016.
Passport Index.
The New Times. African Passport - What Is in It for Ordinary Citizens?
BBC, Should Africa have a single passport?
QUARTZ, The African Union has launched its visa-free passport but it won’t make travel easier for Africans yet
QUARTZ, The barriers to a pan-African passport may be insurmoun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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