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D+314 / 논문을 쓰다가

어느 밤. 도서관. ⓒ우승훈

오늘도 논문을 쓰러 도서관에 왔는데, 영 손에 안잡혀서 인터넷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밖에선 느닷없이 대낮에 폭죽이 터지는데, 마약 파는 사람들이 폭죽으로 고객들한테 자신들의 위치를 알린다는 이야기를 들어 마약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블로그를 켜서 아무거나 써보기로 했다.

내 논문의 주제는 탄자니아의 민주주의 공고화와 야당이다. 탄자니아는 1992년 헌법 개정에서 일당제에서 다당제로 전환하며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이후로 바뀐 것이 있는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는가 라는 의문을 야당을 통해, 넓게 보자면 정당정치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고 있다. 탄자니아의 여당은 독립 이래로 한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야당에 대해 궁금했다. 그들은 왜 매번 지는 것일까, 왜 매번 지는 싸움을 계속 해나가는 것일까? 그리고 본질적인 의문은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라는 것이었다.


얼마전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에서 논문쓰는게 많이 힘들다는 이야길 했었다.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였다. 뭐만 먹으면 체하고, 잠이 급격하게 많이 늘고, 논문이나 책을 읽으려해도 글자만 눈에 들어오고 의미가 해석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수님께  '민주주의'란 개념 자체가 공부할 수록 어렵고, 처음 생각했던 것 처럼 명확하게 논문을 써나갈 수 없고, 영어도 너무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었는데, 평소 좀 무서웠던 교수님은 아주 인자하게 다들 그런거라며, 정상적인 과정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셨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그래도 넌 즐기고 있잖아?'라는 것이었는데, 주제 선정도 너 스스로 했고, 논문 구조도 너 스스로 다 짤 정도로 주제에 흥미가 있고 열정이 있으니 힘들어도 즐겁지 않느냐는 말씀이었다. 원치 않는 주제, 흥미가 떨어지는 주제로 논문을 쓰느라 힘들어 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하셨다.

그러고보면 논문 주제를 정할 때 교수님이 항상 너가 하고싶은 주제로 하라고 하셨던게 새삼 고맙다. 주제를 정하는 과정 내내 나의 일년뿐인 탄자니아 경험과, (교수님 생각에) 민주주의가 발달한 한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경험을 존중해 주셨다. 처음에 고민하던 논문 주제는 두가지였는데, 탄자니아에서 '정체성'을 활용하는 정치에 관한 것과 탄자니아 야당에 관한 것이었는다. 교수님은 여기서 자료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면야 둘 중 뭘 하든 괜찮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 본인의 전공이 민주주의나 탄자니아가 아니었음에도 (이분은 시에라리온 출신으로, 전공은 주로 서아프리카 지역안보, 소년병의 사회 재통합, 경찰제도 등이다) 관련 자료를 소개해주시기도 했고, 몇몇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했다. 다만 논문 구조를 짤 때는 아주 정통적인 구조를 강조하셔서 좀 어려움이 있었다. 이게 석사논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논문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요소를 다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셔서 이걸 분량 내에 다 쓸수 있나 걱정이다.

친구가 내 이야길 듣더니 '논문 깎는 노인'같다고 했다.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그렇게 누가 뭐래도 공 들여 깎고, 다 깎고서도 시간을 두고 확인한 뒤에야 완성되는 그런 훌륭한 방망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암튼 내가 시작한 일이고,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니까, 다시 나를 위한 논문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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