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비아의 독재자, 야흐야 자메의 '평화로운 퇴장'

감비아의 정치 상황에 대한 글을 준비하기 시작한건 지난주 목요일 쯤이었다. 그 당시 생각했던 제목은 "한 나라, 두 대통령, 야흐야 자메(Yahya Jammeh)와 아다마 바로우(Adama Barrow)"였는데, 주말이 지나고 나니 야흐야 자메가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적도 기니행 비행기에 오르는 사진이 실린 기사가 나와있었다. (사실 야흐야 자메 라고 읽는게 맞는건지 잘 모르겠다. 잘못이 있다면 댓글남겨주면 바로 수정하겠다)


토요일 밤. 적도기니행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적도 기니행 비행기에 오르는 야흐야 자메. Photo: AP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재선거를 요구하며 서아프리카 정세를 불안하게 했던 장본인이 여유롭게, 그것도 국고에 있던 1100만 달러(130억원)과 고급 승용차까지 챙겨 망명했다. 이제 감비아의 유일한 대통령이 된 바로우는 야흐야의 반-인권 범죄들을 조사하여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야흐야가 망명한 나라는 로마 규정에 서명하지 않아 국제형사재판소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적도 기니이다. 이렇게 야흐야 자메는 국고를 텅텅 비우고 '평화롭게' 퇴진했다. 그리고 영국의 창고 주문형 할인매장 아고스(Argos) 파트타임 경비원 경력이 있는 부동산 업자이자 얼마전 세네갈에서 취임식을 올린 대통령, 아다마 바로우가 곧 감비아로 돌아올 것이다. 한달 남짓,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감비아에선 대단한 정치드라마가 펼쳐졌고, 이 드라마는 계속 될 것 같다.

런던의 아고스 매장에서 경비원을 했던 아다마 바로우는 아스날 팬이기도 하다. Photo: Twitter @adama_barrow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잠비아와 이름이 비슷해서 종종 헷갈리곤 하는 The Gambia, 감비아를 세계지도에서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감비아강을 따라 길게 형성된 이 나라의 크기는 한반도의 9분의 1정도, 인구는 160만 정도에 불과하며 삼면이 세네갈에 둘러쌓여있기 때문이다.

감비아는 삼면이 세네갈에 둘러쌓인 나라다. Map: Google


작년 12월 1일, 감비아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헌법에 대통령 임기 제한이 없어 96년부터 대통령을 하고 있으면서도 또 출마한 자메와 야권 연대 후보 바로우가 맞붙은 이 선거에선 바로우가 43%를 득표하며 40%를 득표한 자메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자메가 강력한 정보/사정 기관을 이용하여 전국에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시민들이 그에 대해서 비판적인 말을 하길 두려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얼마전 또다른 부동산 업자가 취임한 미국에 샤이 지지층이 많았던 것처럼, 드러내진 않지만 남몰래 바로우를 지지했던 사람이 그만큼 많았던 것인지, 자메의 부하들이 자메를 버리기로 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자메는 패배를 인정하고 바로우 당선자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22년을 집권한 독재자가 쿨하게 물러나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은 12월 9일, 그는 언제 패배를 인정했냐는듯, 선거 결과 무효를 주장하며 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언론에서는 그가 권력을 잃고 난 이후 각종 반-인권 범죄 협의로 기소될 것을 생각하여 입장을 바꾸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자메는 누구인가, 그는 감비아가 영국에서 독립하던 해인 1965년 태어났다. 그는 29세가 되던 1994년, 쿠데타를 통해 다우다 자와라(Dawda Jawara)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고, 야당활동을 금지시켰다 (야당 활동은 2001년 다시 허용된다). 자와라는 독립 감비아의 첫번째 대통령으로, 1970년부터 장기집권하고 있었다. 자메는 1996년의 선거를 시작으로 5년 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APRC(Alliance for Patriotic Reorientation and Construction)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네번을 내리 당선(1996, 2001, 2006, 2011년), 근 22년간 감비아를 지배한다.

그의 내리막길은 2011년 즈음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대 가장 높은 7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는 2011년 선거 결과에 대해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ECOWAS)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이 의혹 제기에 대해 자메는 "내가 패배자 같아 보이나? 감비아 사람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당선되지 않을리가 없다"고 말하는 등 강경하게 나서며 ECOWAS와 등지게 되었고, 2013년엔 커먼웰스에서 탈퇴하며 더욱 고립되게 되었다. 이웃 국가들이나 유럽 국가들과 멀어진 자메는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2015년, 자메는 감비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며, 감비아를 모리타니아(Mauritania)에 이어 아프리카 대륙의 두번째 이슬람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자메는 각종 기행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2007년엔 그가 에이즈를 치료하는 약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이후엔 자신이 여성의 불임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많은 타이틀을 붙이기도 했는데, 그의 공식적인 호칭은 다음과 같다. "His Excellency Sheikh Professor Alhaji Doctor Yahya AJJ Jammeh Babili Mansa". BBC의 기사에 딸린 설명에 따르면, Babili Mansa는 만딩카 어로, '강의 정복자'라는 뜻 정도 된다고 한다. 

자메는 동성애 혐오자이기도 하다. 2008년엔 동성애자들을 처형하겠다고 위협했고, 2014년 UN 총회에서는 서구 정부들이 '반-인간적',이고 '반-알라'적인 동성애를 합법화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이 괴팍한 독재자, 자메를 꺾은 아다마 바로우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우선 그의 직업은 부동산 업자이다. 지난 9월, 감비아의 7개 야당 연대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 전까지, 2006년부터 10년동안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BBC는 이를 두고 같은 업계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보다 더 놀라운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an even bigger shock than that fellow property mogul in the U.S. Donald Trump) 2000년대 초반의 아다마는 영국에서 부동산 공부를 하며 창고 주문형 할인매장인 아고스에서 경비원을 하기도 했었다. 영국 런던의 Holloway Road에 있는 매장에서 일했고, 이때부터 아스날의 팬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할인매장 경비원으로 일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 난 이상하게 이 부분이 감동적이다. 앞으로 이렇게 다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큰 정치인이 되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아다마는 자메와 동갑이다.  감비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던 해에 감비아 동부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부동산 공부를 했고, 2006년 자기 사업을 하기위해 감비아로 돌아왔으며, 2013년 United Democratic Party(UDP)의 회계담당자가되며 정치의 길로 들어섰지만, 오랜기간 무명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작년 UDP의 리더 오사이누 다르보에(Ousainou Darboe)가 체포되며 갑자기 떠올랐다. 

아다마 바로우. Photo: Twitter @Adama_Barrow


오랜기간 자메의 독재와 기행에 지친 감비아 시민들에게,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사법부의 독립성, 언론과 시민의 자유의 확대를 주장한 바로우는 분명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바로우의 취임식은 세네갈의 감비아 대사관에서 1월 19일 치러졌다. 취임식 직후 UN안보리는 만장일치로 배로우를 지지하고, 정권의 평화적 이양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내놓으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취임식에 앞서, 자메가 대통령직을 부여잡고 버티고 있던 12월 13일, 라이베리아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 Sirleaf)가 이끌고, 나이지리아의 무함마두 부하리, 가나의 존 마하마 대통령이 동행한 ECOWAS의 대표단이 잠비아로 건너가 중재에 나섰다. 자메는 평화적 정권 이양 대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여당이 53석 중 48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를 움직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권력의 공백을 막는다는 구실로 그의 대통령 임기를 90일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했다. 이후 협상의 데드라인이었던 1월 19일을 기점으로, 세네갈과 나이지리아 병력이 감비아로 진입한다. 

19일, 세네갈과 나이지리아 병력이 감비아에 진입할때 까지만해도, 나는 자메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2011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메는,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가다피같은 길을 걷지 않을거라며 신이 그리하라 한다면, 십억년도 감비아를 다스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지킬것만 같아 보였다. 



하지만 대통령직보다 더 달콤한 것은 돈이었을까, 그는 주말동안 마음을 고쳐먹고, 돈을 싸들고, 차를 싸들고 적도 기니로 날아갔다. 이런 '평화로운 퇴진'이 소위 말하는 '국제사회의 중재'과정에서 제시된 조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22년동안 갖가지 악행과 기행을 저지른 그는 그렇게 날아갔다. ECOWAS, 혹은 다른 국제사회의 리더들은 감비아의 국고가 털리고 자메의 범죄를 처벌할 일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다른 말로 하면 정의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단 어쨌거나 감비아 사태를 마무리지어서 자신들의 이익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게 '중재'의 목표였던 것 같다. '평화'는 때론 이렇게 이상하게 거래된다.


자메와의 일은 깔끔하게 끝내지 못했지만, 정말 어렵게 세번째 대통령을 만난 감비아의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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