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를 한다는 것, 해외봉사를 한다는 것, 산다는 것.

제목에서 '봉사'라는 말을 썼지만, 저는 해외에 봉사하러 왔다는 표현을 엄청 꺼려합니다. 다행히도 인턴이라는 직책이 있을땐, 인턴을 하고 있다고 하거나, '해외자원활동'이라며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단어를 제멋대로 쓰곤 했습니다.


봉사라는 말을 꺼려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봉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흔히들 봉사는 '좋은 일', '남돕는 일', 봉사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 '희생정신이 있는 사람' 혹은 '봉사 시간 쌓으려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봉사자'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착하지도, 희생정신이 남들에 비해 투철하지도, 봉사시간을 모으는 사람도 아닙니다. (물론 요즘은 vms로 알아서 입력해주셔서 저도 모르게 봉사시간이 쌓여 덕을 보긴 했습니다.) 다른 이유로는 그냥 쑥쓰러워서, 그냥 입에 안붙어서 등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센병 환자 수발부터 해외단기봉사, 연탄나눔봉사까지 이른바 봉사 활동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활동들을 해온 이유를 하나만 말하라면,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기분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딴거하지 왜 그런것만 했냐 라고 하면, 우연히도 그런 일들에 인연이 닿았을 뿐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첫 봉사활동은 한센병 환자 수발이었습니다. 이유는 좀 이상한데, 대학 1학년을 마치고서 수많은 대학 신입생들이 겪는 공허함에 빠져 어디든 가고 싶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인권법 시간에 들었던 '소록도'가 떠올랐고, 봉사자가 되면 밥주고 재워준다는 이야기에 별 생각 없이 짐을 꾸려 섬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곤 그곳에 25일동안 머물렀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피성 봉사' 라고 표현하면 딱일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도피성 봉사가 저의 눈을 뜨게했습니다. '사람'을 만났습니다. 얼굴이, 손끝이, 발끝이 문드러져 들어가는 한센병에 걸린 노인병동의 할아버지들의 많이 망가진 외모 뒤에서 아름다운 미소와 지혜를 만났고, 함께 봉사회관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를 가졌습니다.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갑도 을도 없는 그런 관계를..(운좋게도 딱 그렇게 느낄정도로만 머물렀습니다.)  첫 활동에서 수많은 새로운 것들을 접한 저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봉사활동'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하게됩니다.


봉사활동을 할 때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나,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봉사에 대한 생각에 빠져듭니다. 도대체 봉사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마음으로 해야하는 것일까?

'나를 키운건 8할이 봉사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배웠습니다. 작은 노력을 했을 뿐인데 너무나 큰 것들이 되돌아 왔던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봉사활동은 '나를 돕는 활동'이었던것 같습니다. 물론 저만 도운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좀 더 행복해지긴 했겠습니다만, 어쨋거나 그래서 저는 '자원활동'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는 그런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히 누군가를 돕고, 구제할 수 있는 인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겠지요. (구원자 콤플랙스와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한,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만한 사람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만남은 오히려 서로에게 마이너스입니다. 삶에서 각자 다른 이유로 어려움에 처한 두 사람이 만나는 접점에 자원활동이 있었으면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과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만남, 혹은 건강상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과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만남과 같이 말이지요. 그렇게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고 있고, 내가 활동하면서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과거 연탄은행의 인턴으로 일할 때, 약 두달동안 많은 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봉사자들을 인솔하면서 가만히 관찰해 보면 대게 패턴이 비슷합니다. 봉사자들은 처음에는 의욕에 넘쳐서 연탄 숫자에 집착합니다. 얼마나 짊어지고 올라가는가, 얼마나 높은 집으로 옮기는가 등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달동네의 사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끝날때 쯤에는 달동네에 사는 우리의 이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곤 각자 여러가지 생각을 안고서 집에 돌아갑니다. 그러면 그들이 좀 더 '우리 함께 사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나는 기대했습니다.



해외활동은 어떤가요? 짧든 길든 해외봉사활동 혹은 국제개발활동(사실 '개발'이라는 단어를 싫어해 잘 쓰지 않는 말입니다.)에 임할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2주의 해외단기봉사활동과, 여전히 단기지만 1년의 인턴 활동을 거치면서 아직도 이 의문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 무대가 해외든 국내든 크나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좀 많이 개인적인 자세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너무 비장한거 아니냐고, 너무 과한거 아니냐고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을 겪고, 보면서 사실 운만 나쁘면 언제 죽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 죽을 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활동하는 이 곳은 더이상 지나가는 곳이 아니게 됩니다. 떠나갈 생각보다는 살아갈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 땅에서 죽을지도 모르기에 떠나갈 생각보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오늘을,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문득, 하이데거가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고 했던게 떠오르네요.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죽음으로부터 도피하기 보다는, 죽음을 직시한다면, 우리의 오늘은,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라는 그의 통찰을 탄자니아에서 체험했습니다.


잠시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로 빠져들었는데, 탄자니아에서 머물면서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저보다 훨씬 오래 있었던 사람들을 보며 '이런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어느정도 굳혔고, 주변에 누군가가 국내외에서 자원활동이나 봉사를 한다고 하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우선, 앞서도 말했지만 '오만해 지지 말 것' 그대는 우리 모두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고, 그대가 없어도 큰일은 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그대를 각인시키려고 용쓰지 말것, 이해없이 사랑없고, 상대의 아래 설때(Understand)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좋겠습니다.
두번째, 떠나야 할 때를 알 것, 스스로가 너무나도 힘들고 다른이와 함께 할 마음의 여유가 도저히 되지 않을 땐, 현장을 떠나는 것을 생각해 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함께 나아가는 그런 활동을 이상이라고 했지만, 스스로 너무나도 망가져서 다른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여유조차 없다면 따뜻한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5월. Dar es Salaam, Tanzania. By Tuma.


저는 졸업을 한학기 앞두고서 많은 고민을 하던 와중에 탄자니아에 NGO 인턴을 지원했고, 가게되었습니다. 결코 '도피성'이라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거기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행복을 더 많이 나누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정도면 어느정도 서로 기대며 나아간다는 저의 이상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요?


봉사를 한다는 것은, 서로 기대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서로 기대어 나아가는 삶을 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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