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이후 5년. 아직도 오지 않은 이집트의 봄

'아랍의 봄'이 이집트에도 찾아왔었던게 5년 전이다. 나와 같은 기숙사에 사는 이집트 친구는 2011년 1월과 2월을 종종 회상하곤 한다. 그도 카이로 각지에서 독재퇴진을 외쳤고, 타흐리르 광장의 대 토론에 참여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작년, 그는 사랑하는 조국 이집트를 떠나 영국으로 유학왔다. 지금 이집트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에게 아랍어를 가르쳐주던 이집트 친구가 있다. 얼마전 가족들과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직전 이집트 정부가 홍해의 두 섬의 관할권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넘긴다는 발표가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는 그걸 어떻게 대통령 혼자 결정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발표 이후 이집트 내에서 반대 시위가 잇달았고, 정권은 활동가 237명을 재판에 회부하며 응수했다. 친구에게 언제 돌아오느냐 물었다. 어쩌면 다음학기가 시작하기 전 8월쯤 돌아올 수 있고, 이집트의 상황이 나빠진다면 이집트에 남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 시절의 사람들의 마음도 이렇지 않았을까? 


알-시시 정권이 홍해의 두 섬을 사우디에 넘긴다는 발표를 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Photo:  REUTERS/Amr Abdallah Dalsh


아랍의 봄은 짧았고, 이집트 사람들은 아직 민주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2013년의 쿠데타와 뒤이은 선거를 통해 사실상 군사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압델 파타 알-시시(Abdel Fattah al-Sisi) 정권이 들어섰고, 장군에서 대통령으로 변신한 알-시시는 무바라크 시절보다 더 심하게 시민들을 억압하고 있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첫번째 민선 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이집트 사회에서 영향력이 컸던 정치단체, 무슬림형제단은 심각하게 핍박받고 불법화 되었으며, 사회의 불만은 감시당하고, 통제당하고 있으며, 친 정부적인 정치 활동만이 허용되고 있다. 최근 이집트의 정치체제는 무바라크와 비교되는 수준을 넘어, 1960년대 독재자 가말 나세르(Gamal Nasser)의 억압과 비교되고 있을 정도이다. 한편, 이집트 경제는 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위기와 시나이반도에서의 테러 증가로 불안정한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시위대의 모습. Photo: AP
알 시시는 취임하면서부터 경제위기와 민주화 요구라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알 시시의 유래없이 강력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미 두명의 대통령을 시위로 몰아낸 경험이 있는 이집트 민중은 그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한편 이집트 군부는 이 기간동안 이집트의 '최종 결정권자'로의 지위를 재확인하고,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군부는 단순히 안보를 담당하는 기관이 아닌 그 스스로가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민중들의 저항과 통제 불능의 군부 사이의 알 시시 정권은 언제 붕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혁명부터 알-시시의 선출까지

2011년, 튀니지의 독재자 벤 알리를 몰아냈던 '자스민 혁명'의 물결이 이집트에 닿았다. 1월 25일 시작된 민중봉기는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의 대통령 사임과 최고군사위원회(SCAF)로의 권력 이양 발표와 함께 끝났다. 독재자를 몰아낸 이집트 시민들은 민주화를 기대했지만, 혁명 이후 상황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2012년, 이집트인들은 52%의 투표율로 이집트 역사상 첫번째 민간인출신 대통령, 모하메드 모르시(Mohamed Morsi)를 선출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이 큰 이슬람주의단체 무슬림형제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유 정의당(Freedom and Justice Party)의 후보였다.

모르시는 대통령직을 1년밖에 지키지 못했다. 그의 권위주의적이고 이슬람주의적 통치에 대해 이집트 민중은 다시 2013년 6월,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고, 봉기에 뒤이은 쿠데타로 그는 물러나야만했다. 모르시가 물러나기 전 이집트의 고위 군 장성들과 반(反) 모르시를 외치던 민중 지도자들은 비밀 회동을 가졌다. 수십년동안 그들은 적대관계였다. 누가 손을 먼저 내밀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로 적대하던 군부와 시민사회는 함께 모르시 퇴진을 기획했고, 실행으로 옮겼다. 결국 이 이상한 동맹은 군부세력이 전권을 쥘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말았다. 모르시가 물러난 직후, 모르시의 지지자들은 라바 광장과 나흐다 광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군부는 이들을 '청소'했고, 약 1,000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기록하는 참사를 낳았다.
모르시 퇴진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모습. Photo: The Times

결국 과도정부는 군부에 의해 들어섰다. 과도정부는 무슬림 형제단을 해체시키고, 헌법을 개정했다. 새로운 헌법에서는 모르시 시절 추가되었던 이슬람주의적 항목들이 지워졌고, 종교 기반의 정당을 금지시킨다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또한 민간인을 군사 재판에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등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항목들도 추가되었다. 이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는 2014년 1월 실시되었다. 국민들의 98%가 개정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투표율은 38%에 그쳤다. 뒤이은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군부가 지지하는 전 국방부 장관, 알-시시가 90%이상의 득표와 함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군부는 주요한 반대세력들을 모두 선거에서 금지했고, 알-시시의 후보 지명에도 관여했다. 군부의 정치 개입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2011년의 혁명 이후, 군부는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위협해 왔다. 첫번째 총선이 무슬림형제단의 다수 의석 차지로 끝났을 때, 최고군사위원회는 '위헌'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시켰고, 모르시가 201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땐, 군부는 의도적으로 대선 결과의 발표를 미뤘다. 2014년, 군부가 지명한 알-시시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집트 군부는 마침내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다.




이집트의 정치 구조

이집트는 2012년부터 2015년 10월 총선 전까지 국회가 없었다. 2015년의 총선마저도 엄중한 통제속에 치러졌다. 국회가 없던 기간동안 과도정부와 뒤를 이은 알-시시 대통령은 일명 '반-집회 법', '테러방지법' 그리고 'NGO 법'을 연이어 통과시켰다. 이 법들은 반대세력이 민주주의적 권리행사를 통해 정당을 만들거나, 권위주의에 저항할 수 없도록 반대세력의 시민권을 제한했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야권세력, 무슬림형제단은 아예 금지당하고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정되었다. 결국 알-시시는 어느 당에도 속해있지 않았지만, 국회는 사업가들, 전직 장교들, 무바라크 시절 인사들, 그리고 '이집트 사랑 (For the Love of Egypt)'과 같은 친 대통령 정당으로 구성되며 훌륭한 '정권의 거수기'가 되었다. 

카이로 시내에 걸려 있는 알-시시 포스터. Photo: Mohamed Abd El Ghany/Reuters

역사적으로 어느 정권에서든 군부는 국가적 사안의 '최종 결정자' 역할을 해왔다. 2011년의 혁명적 민중봉기 이후, 군부는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지켜내기 위해 무슬림형제단과의 연정을 구상하였다. 하지만 하지만 모르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통적인 군부의 영역인 안보 기구들에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했고, 결국 군부는 시민사회와 협력해 모르시를 몰아냈다. 2013년의 민중봉기와 뒤이은 쿠데타 직후, 최고군사위원회는 통치권을 넘겨 받았고, 무바라크 시절의 판사였던 아들리 만수르(Adly Mansour)를 과도정부 대통령에 앉혔다. 이런 식으로 군부는 2011년의 혁명때도 이익을 챙겼다. 당시 그들을 무바라크를 등지고, 대신 그들의 이익을 지켜냈다. 2011년부터 계속된 과도기동안, 군부는 그들에게 유리한 권력구조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그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만평: Carlos Latuff

현재 최고군사위원회는 독립적인 기구이다. 만수르 과도정부가 개정한 헌법에서 군부에 국가 안보사안, 예산, 그리고 군사 정의에 관련된 사안에 대한 군부의 결정권을 확장했고, 특히 헌법 234조는 최고군사위원회에게 향후 두번의 대통령 임기동안 국방부 장관을 스스로 임명할 권한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군부는 정치지도자에게 종속되지 않게 된 것이다. 알-시시가 그의 측근들을 군부와 정보기관에 임명하면서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긴 하지만, 군부 엘리트, 세드키 소브히(Sedki Sobhi) 국방장관과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군부와 군부가 가진 경제적 영향력을 독립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알-시시 정권의 정통성

1971년의 이집트 헌법은 이집트를 '민주주의 국가'로 명시하고 있고, 1950년부터 이집트에서는 정기적인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져왔다. 하지만, 나세르에서 무바라크, 그리고 오늘날의 알-시시에 이르까지 이 선거들은 위로부터 감독되어오고 조작되어왔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알-시시는 홀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동시에 그는 이슬람주의 후보들이 출마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런식으로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정통성 확보가 약해지자 이집트 대통령들은 아랍 민족주의(나세르), 경제 성장(무바라크), 종교(모르시) 등을 부족한 정통성의 보완책으로 이용해왔다. 

나세르(사진 속 양장차림 남성)가 제창한 아랍 민족주의는 젊은 가다피(사진속 군복 남성)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Photo: Getty Images

알-시시는 시작부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2013년의 민중봉기 당시, 군부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의 '부름에 응답'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민주화를 이끌어야 하지만, 모르시를 몰아낸 군부는 무슬림 형제단이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권력에 참여하는 것을 무력으로 막아버렸다. 알-시시는 이런 상황에서 안보와 경제를 민주주의적 가치보다 강조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시의 이집트 상황은 그가 그런 전략을 쓰기 좋은 상황이었다. 모르시가 물러나고 2년 뒤인 2015년의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 내 폭력사태는 3배나 증가했고, 2011년 민중봉기때부터 시작된 경제침체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 알-시시 정권은 테러리즘과의 전쟁, 그리고 경제 성장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강압적 통치를 정당화했고, 이렇게 표면적으로 내세운 목표들은 실제로도 어느정도 달성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알-시시 정권은 대중적 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다. 알-시시가 당선된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50%가 되지 않았고, 다음해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28%에 불과했다. 이 투표율은 무슬림형제단이 승리했던 2012년 대통령선거와 2011년 국회의원선거보다 낮은 투표율이다.

이런 비 민주적인 정치에도 불구하고 알-시시 정권은 국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미국의 우호관계를 구축했다. 알-시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알-시시의 선출을 축하했고, 2015년 5월 들어서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쿠데타와 함께 중단되었던 연 13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재개시켰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알-시시 대통령.  Photo: AFP/Getty Images

미국 뿐 아니라 이집트 이웃의 걸프 국가(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쿠웨이트 등)들도 알-시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걸프 국가들은 2013년 쿠테타를 즉각적으로 지지했었고, 곧바로 120억 달러의 금융지원과 에너지 지원을 하기도 했었다. 자국 내에 이슬람주의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걸프 국가들로선 이집트에서 모르시와 무슬림 형제단이 와해된 것이 환영할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다에시(일명 ISIL)가 이 지역에서 성장함에 따라, 미국이나 걸프 국가들에게 이집트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고, 당분간은 이집트에 대한 외부의 지원은 풍족하게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알-시시 정권의 정치경제

2011년 혁명 이후, 이집트 경제는 불황에 시달렸다. 하지만 2014년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GDP 성장률은 4%대로 증가했고, 앞으로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 이는 주로 정치적 안정과, 걸프 국가들의 유래없이 막대한 경제적 지원 덕분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집트 경제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이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고, 정부예산 적자가 크며, 정부 부채도 많다. 무엇보다도 2010년엔 9%였다가 2013년엔 13%까지 오른 실업율도 큰 문제다. 알-시시는 취임하면서 그 스스로를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을 이끌 사람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경제문제는 그에게 대통령 직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알-시시는 취임과 동시에 경제구조 개혁을 주요 골자로 한 경제계획들을 내놓았고, 어느정도 성과를 냈다. 하지만 군부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특수한 이집트 경제 구조 때문에 언젠간 그의 경제개혁도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경제는 국가부문, 개인부문, 그리고 군사부문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국가부문은 다수의 이집트 인구를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큰 반면 개인부분은 아직 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낮다. 그리고 이집트 경제에서는 특이하게도 군사부문의 비중이 크다. 이 특이한 군사경제는 1956년부터 1970년까지 집권한 나세르 정권의 '범 아랍 민족주의'와 개발우선정책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에서 군사경제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 이후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가 자국 경제에대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얼만큼인지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군부는 이집트 경제의 15~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의 경제 활동은 면세 대상이고, 실질적인 감사도 받지 않으며, 저임금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경제 제국"을 건설했다. 35개가 넘는 공장과 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분야도 대형 기반산업부터 식료품, 관광산업까지 사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최근 모르시의 퇴진과 군사정권의 공고화는 외부 투자가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곧 군부와 관련된 기업들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군부 경제는 성장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어렵다. 이집트 인구 네명중 한명이 여전히 빈곤층으로 분류되고 있고, 2015년 기준, 12.8%의 인구가 직업 없이 살아가고 있다. 군부 경제활동은 대체로 과세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이익은 낙수효과를 낳지도 않는다. 이러다보니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큰 기업보다 더 세금을 많이 내고있고, 공공 프로젝트 산업에는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정부는 이집트를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떠오르는 신흥시장으로 보고 있다.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알-시시 대통령을 예방했고, 뒤이어 사기업과 정부 관계자들로 구성된 약 150명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이집트를 방문했다. 이틀의 일정동안 1,000만달러의 수출계약을 따냈다고 언론에서는 밝히고 있다.

알-시시 대통령을 예방하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Photo: 연합뉴스




민중에 대한 억압

알-시시는 인권침해와 권위주의적 정치로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비판들이 정당하지 않다며 이집트와 이집트 주변의 특수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시시는 많은 인터뷰와 연설을 통해 테러의 위협을 강조해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은 반드시 안보 문제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기반이 약한 알-시시는 그의 정치생명을 억압과 폭력에 의존하며 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말했듯, 알-시시는 반대세력을 마음 껏 억압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법률들을 통과시켰다. 2015년부터 시행된 '테러방지법'(Law 94 of 2015)은 '테러활동'을 아주 불분명하게 아주 넓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테러활동'에 대한 추가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전 대통령 모르시를 포함, 최소 3,000명의 사람들이 '테러'와 정치적 소요사태를 일으킨 혐의로 군사법정에 세워졌다. 심지어 이 법은 기자가 정부의 공식 발표와 다른 내용의 '테러'활동을 보도하면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와는 별개로 기자들은 빈번하게 '대중 윤리'를 해치는 '잘못된 뉴스'를 보도한다는 이유로 기소당하고 있다. 최근엔 NGO 종사자들과 인권 운동가들이 줄줄이 소환당하고, 국외 여행을 금지당하고, 자산을 동결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2011년 당시 시민사회에 대한 외부 자금 유입을 조사했던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식으로 시민사회에 대해 전방위적인 탄압이 가해지고 있지만, 알-시시 취임 이후에 무바라크 정권 시절인 2008년부터 2010년동안 일어났던 시위보다 약 5배나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게다가 다에시는 북부 시나이 반도에서 계속해서 무력을 행사하고 있고, 무슬림 형제단으로 추정되는 세력들은 이집트 전국에서 이집트군과 관광객들을 공격하고 있다. 관광수입이 상당한 이집트에게 이런 세력들의 존재는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되고 있다. 이에 이집트 정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집트 군대를 활용하여 대응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집트 군부가 본연의 임무 보다 정치, 경제활동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국가를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맺는말

이집트 민중들은 5년동안 2명의 이집트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이 '혁명'들은 이집트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는 커녕 유래없이 억압적인 권위주의 정권을 복귀시키고 말았다. 우리의 4.19혁명과 그 다음해의 5.16 쿠데타와 비슷한 패턴이다. 알-시시 대통령은 강력한 억압으로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며 그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정권의 내부적 정통성은 부족하지만, 군부와 미국, 걸프국가들에게서 막대한 지원를 받아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집트를 신흥시장으로 보고 투자하려는 국가들이 늘어나면, 그 또한 알-시시의 정권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시시 정권은 아주 불안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집트 시민들의 불만은 이미 극에 달했고, 앞으로 그가 계속해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아니면 그의 두 전임자처럼 물러나게 될 것인지는 안타깝지만 사실상 군부에 달려있다. 지금 당장 이집트에 어떤 큰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참고자료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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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aa Farid, “Egyptian army’s economic empire: Unidentified market share yet high impact”, Daily News Egypt. 7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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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y Austin Holmes and Hussein Baoumi, Egypt’s Protests by the Numbers.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Januar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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