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초보' 탄자니아와 대한민국 - 카게라 지진과 경주 지진

어제 또 집이 흔들. '여진'이 있었단다. 꼭 지진은 저녁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부산에서 이정도면 경주 사람들은 트라우마 생겼을 것 같다. 지난번 경주 큰 지진은 저녁으로 치킨을 먹다가 경험했다. 텔레비전 보면서 치킨 뜯고 있었는데 바닥이 그르르르릉 거리더니 건물이 휘청하는 듯한 흔들림을 느꼈고, 이게 지진인가 전쟁인가 싶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몇 분 뒤 이게 지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올해 이 정도 세기는 아니라도 지진을 자주 겪었다며 이야기하셨고, 재난경보문자에선 '안전에 유의'하라고만 해서, 놀란 가슴이 두근거리긴 했지만, 안전에 유의하며 치킨을 계속 먹기로 했다. 한 50분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늦게 퇴근하셔서 아버지 옆에서 남은 닭을 뜯고 있는데, 더 길고, 더 강력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더는 집에 있을 수 없어 계단을 이용하여 아파트를 나온 뒤, 집 뒤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경주 지진'이라고 불리는 그 날의 지진은 규모(magnitude) 5.8.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지진들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USGS-미국 지질 조사소-에서는 규모 5.4로 발표하고 있다) 대부분의 친척이 경남지역에 살고 있어서 이번 추석에도 지진 이야기는 많이 회자하였다. 부산은 물론 경남 진해의 친척들도, 심지어 천안에 사는 사촌 형도 지진을 느꼈다며 각자의 지진 경험담을 이야기했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특히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공감하기도 했다.


USGS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경주 지진 지도.

지진이 있던 날, 나는 운동장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한국에 큰 지진이 있기 바로 전 주, 탄자니아 북서부 카게라(Kagera)에서 큰 지진이 있었고, 많은 집이 무너져 17명 이상의 사람이 사망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우리 동네가 더 큰 지진으로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9월 10일 오후 3시 27분 경(USGS 발표 기준), 탄자니아 북서부도시 카게라 주의 부코바(Bukoba)시 북서부에서 발생한 지진은 지금까지 19명의 공식 사망자(The Citizen 2016/9/15)와 최소 250명의 부상자(The Citizen 2016/9/14), 그리고 약 1,000가구 이상의 건물 완파(The Citizen 2016/9/15)의 피해를 줬다고 알려져 있다. 탄자니아 언론들은 이 지진의 규모를 5.7로 발표하고 있고, 미국 지질 조사소에서는 5.9로 발표하고 있다.

USGS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카게라 지진 지도

우리나라 경주 지진처럼, 카게라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은 살면서 처음 겪는 큰 흔들림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탄자니아의 도시 지역들은 물론이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자체가 역사적으로 큰 지진이 적은 대륙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유독 대지구대(Great Rift Valley) 지역에서만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번에 지진이 일어난 카게라 지역도 빅토리아 호수 좌측에 위치하여, 빅토리아 호수를 둘러싸는 모양을 한 대지구대 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대지구대는 레바논에서부터 모잠비크까지, 아프리카 대륙 동쪽을 따라 약 6,000Km 뻗어있다. 전체 대지구대 중 홍해와 아덴만 사이에 위치한 아파르 삼각지(Afar Triple Junction)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뻗어 동아프리카 지역에 걸쳐있는 대지구대를 보통 동아프리카 지구대(East African Rift)라고 불리는데, 이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는 아프리카판이 둘로 나뉘는 지질활동이 관측되고 있다. 소말리(Somali)판이라고 불리는 동아프리카 판과 누비안(Nubian)판이라고 불리는 큰 판이 서로 멀어지면서 생기는 균열현상으로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는 지진과 화산활동이 관측되고 있다. 이 지구대 위에서 크게 인명피해를 낸 지진은 없었지만, 규모가 큰 지진은 꽤 있었다. 1995년 이후 가장 큰 지진은 규모 2006년 모잠비크에 있었던 7.0 규모의 지진이었다.

1995-2015년, 규모 7.0 이상의 지진 분포. (Graphic: Economist)
  

대지구대와 둘로 갈라지고 있는 아프리카 판 (출처: http://www.coolgeography.co.uk/)

1945년 이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규모 4.5이상의 지진들.
지진이 동아프리카 지구대를 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USGS) 

탄자니아는 북부 지역과 서부지역이 동아프리카 대지구대 위에 있어 지진을 종종 경험해 왔는데, 지금까지 강력한 지진들은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과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탕가니카 호수 지역에서 일어나 큰 피해는 없었고, 이번 지진이 피해 규모로는 가장 큰 지진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75년 이후 탄자니아에서 발생한 지진들 (Source: USGS)

카게라 지진은 규모가 경주 지진과 비슷하지만 피해는 훨씬 컸는데, 피해 지역의 건물들이 지진에 더 취약했던 탓이 크겠지만, 실질적인 강도도 카게라 지진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질 조사소가 사용하고,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지진의 강도를 기준으로 하는 MMI(수정 메르칼리 진도계)에 따르면, 이번에 한국에서 발생한 지진의 진앙과 가까운 경주의 MMI는 보통(Moderate) 강도를 의미하는 5(V로 표기)였는데, 카게라 지진의 진앙과 가까운 부코바(Bukoba)의 MMI는 강력함(Strong)을 뜻하는 6(VI로 표기)이었다. MMI 기준으로 V는 약간의 접시와 창이 깨질 수 있는 정도의 강도를 의미하고, VI는 약간의 무거운 가구들이 움직이고, 건물 일부가 약간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정도의 강도를 의미한다.

지진은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지진에 잘 대비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의 부실한 대응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데, 탄자니아에서도 역시 이 부분이 지적되고 있다. 탄자니아의 언론과 야당 정치인들은 지진이 있고 나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정부에 의한 컨트롤타워가 설치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카게라(Kagera) 지역 장관 살룸 키주(Salum Kijuu)는 피해자들이 정부와 민간 기부로부터 필요한 수준의 지원을 받고 있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키주 장관은 오늘(20일) 관영신문 Daily News와의 인터뷰에서 군 병력이 곧 복구작업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는 적십자를 중심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탄자니아에는 재난 관리부 (Disaster Management Department, DMD)가 있지만, 자금 부족으로 이번 지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특히 지진과 관련해서 전문성을 가져야 할 기상청(Tanzania Meteorological Agency, TMA)과  지질조사국(The Geological Survey of Tanzania, GST)도 지진 예측 및 후속 조치에서 무능했다. 기상청은 홈페이지 접속도 안 될 뿐더러(9월 20일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지진 '속보'를 전하긴 했지만, 이미 2시간 반이 지난 후였다. 지질조사국은 지진 이후 여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여진이 더 있을 것인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The Citizen 2016/9/13). 탄자니아는 국토의 많은 부분이 동아프리카 지진대에 있는 만큼, 지진 관련 예측 및 대비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많은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진 피해 복구에 약 950억 탄자니아 실링(우리 돈 약 483억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가운데, 카게라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탄자니아 각계각층의 모금이 이어지고 있다. 다레살람의 키논도니(Kinondoni) 지방정부에서는 '카게라를 위한 걷기대회(Walk for Kagera)'를 개최하여 5억 실링을 모금했고, 국무총리가 주최한 기부 행사에선 각국 대사와 기업인들이 약 7억 탄자니아 실링을 기부했으며, 국회의원들이 일일 의정비(1인당 22만 실링)를 전액 기부하기로 의결하기도 했고, 각 종교계도 구호 기금을 모아 전달했다.


카게라를 위한 걷기대회 모습. 전직 대통령 알리 하산 므위니(Ali Hassan Mwinyi, 왼쪽에서 세번째)도 참석했다. Photo: Mohamed Mambo, Daily News

경주 지진 이후, 어머니는 집이 무너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집이 무너져 깔리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겠지만, 아파트가 보험에 들려 있는지 확인하시는 걸 보니 가장 큰 재산을 잃는 것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으신 것 같다. 카게라 지진에서 1,000채 이상의 집이 완파되었다고 한다. 탄자니아에 있을 때 자기 집을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완성된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게 아니라, 미완성된 집에 살면서 벽돌을 하나하나 올려 자기 집을 지어나간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지진에서 완파되었다고 하는 1,000가구 중에 이런 집도 많이 있을 거로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 집이 무너지는 것처럼 마음도 무너지지 않았을까?

Photo: The Citizen


지진의 흔들림은 짧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흔들거리고 있다. 그 마음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철저한 대비책 마련이다. 앞으로 '지진 초보' 탄자니아와 한국 정부가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지진 관련 뉴스 영상들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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