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한 민족 감정, '국가비상사태' 선포된 에티오피아


올해 5월 있었던 아프리카 3개국 순방 일정 중, 에티오피아의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총리와 환담을 나누는 박근혜 대통령. Photo: 연합뉴스





에티오피아는 지난 10년동안 연평균 GDP 성장률 10%대를 기록하며,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지역은 물론 동아프리카지역에서도 가장 유망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고 있고, 특히 우리나라와는 한국 전쟁 당시 아프리카 유일의 지상군 파병 국가라는 역사적 인연과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우리 정부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에티오피아는 지금 '격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큰 바람이 불고 있다. 오랜 기간 누적된 '차별받는 다수 민족'의 저항이 그 어느때보다도 격렬하게 터져나오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국가대표, 페이사 릴레사. 그는 올림픽에서 오로미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리고자 '정치적 행위'를 했다. Photo: Olivier Morin © Scanpix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일어났던 한 '정치적 행위'가 많은 이들에게 벌써 잊혀졌을지도 모르겠다. 에티오피아 마라톤 국가대표 페이사 릴레사(Feyisa Lilesa)가 주먹을 쥔 채 두 팔을 들어 올려 엑스(X)를 그렸던 그 '정치적 행위'는 에티오피아의 가장 큰 지역인 '오로미아(Oromia)'지역의 반정부 시위와 관련된 행동이었다. 그 반정부 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있고, 최근엔 에티오피아 정부가 오로미아 지역을 통제해온 지난 25년 중 가장 격렬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결국 에티오피아 정부는 지난 9일, 6개월짜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티오피아는 민족성에 기반한 연방제 국가이다. 

오로미아 지역에서 이렇게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중순 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가 최근엔 암하라 지역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오로미아와 암하르(Amhar) 지역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두 민족, 오로모(Oromo)와 암하라(Amhara) 민족이 사는 땅이다. 에티오피아 전체 인구에서 오로모는 약 34%, 암하라는 27% 정도로 다른 민족에 비해 압도적으로 인구수가 많다.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인 소말리가 약 6%정도다)

최근 있었던 반정부 시위 중 가장 기사화가 많이 된 사건은 10월 2일의 이레차(Irreecha) 축제 중 일어난 폭력사태이다. 이레차는 오로모 민족의 추수감사절 같은 축제로, 우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추수를 시작하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라고 한다. 10월 2일의 이레차에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디스 아바바에서 남동쪽 40km쯤 위치한 비쇼프투(Bishoftu)라는 곳에 모였다. 이미 오로미아의 반정부 감정은 격화될 만큼 격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앙 정부에서도 다른 해보다 많은 군경을 비쇼프투에 파견했다. Human Right Watch가 목격자들에게서 들었다는 당시 상황에 따르면, (HRW의 기사 원문) 이날 행사는 삼엄한 군경의 통제 아래 시작되었고, 행사가 친정부 인사에 의해 이끌어지는가 하면, 군 헬리콥터가 저공비행을 하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이에 화가 난 몇몇 축제 참가자들이 무대에 뛰어 올라 반정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고, 축제는 결국 거대한 반정부 시위로 바뀌어 버렸다. 여기에 군인들이 최루가스를 뿌렸고, 몇몇 참가자들은 총성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날 사건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정부에서는 50여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독립매체와 인권단체는 5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사건에 대해 하일레마리암 데살렌(Hailemariam Desalegn) 총리는 오히려 축제 참가자들이 먼저 폭력시위를 벌인 것이고, 에리트리아와 이집트 같은 '외부의 적'들이 사태를 부추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 결국 지난 9일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언제든 군인들을 투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로모와 암하라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에티오피아의 정치와 경제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나 수도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의 눈부신 발전과 오로미아와 암하르의 만성적 저개발은 이 곳사람들의 불만을 더욱 키워왔다. 오로미아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땅을 빼앗아 공장을 지으면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공장 노동자 채용에서 오로모 사람들을 차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레차 축제 사건 이후 몇몇 외국 공장들이 공격당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오로미아 지역의 반정부 시위는 아디스 아바바의 확장 계획을 반대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전환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에티오피아 정부가 오로미아 가운데 위치한 아디스 아바바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 계획은 아디스 아바바 확장으로 땅을 잃게 될 오로모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이 계획은 논란속에 올해 초 결국 무산되었지만, 한번 터져나온 오로모인들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지금까지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암하르 지역의 시위는 티그레이(Tigray) 지역과의 영역 다툼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하르 지역과 오로모 지역의 반정부 시위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두 민족 모두 소수 민족으로 정부를 장악한 티그레이 민족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1991년 반군에 의해 축출된 뒤 짐바브웨로 망명, 지금까지 거기 머물고 있다. Photo: BBC

에티오피아는 1991년, 악명 높은 독재자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Mengistu Haile Mariam)을 축출한 이후 지금까지 '민족에 기반한 연방제'라는 특이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가주의nationalism'을 앞세우고 민족(혹은 부족) 정체성을 지우려고 애쓴 것과는 반대의 행보이다. 1991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반군들에 의해 축출될 당시 주요 세력은 티그레이에서 온 게릴라군이었고, 그때 에티오피아의 중앙 정치를 장악한 티그레이 민족은 지금까지도 그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티그레이 게릴라군의 지도자였던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는 1995년부터 2012년 사망할 때 까지 국무총리를 맡아 에티오피아를 지배했고, 티그레이 인들의 정당인 Tigrayan People's Liberation Front(TPLF)는 지금의 집권 연정인 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Democratic Front(EPRDF)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자지하고 있다.


이레차 축제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오로모 사람들. Photo: Reuters.

최근 데살렌 총리가 현재의 선거 제도는 51%의 득표만으로도 모든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며, 개혁할 의사를 밝혔지만, 야당은 이미 늦었고,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 하다. 에티오피아의 불안정, 에티오피아 정부의 국민 탄압은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


일련의 과정을 조사하면서 생각보다 에티오피아에 관한 최근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 정부가 이런 부분에까지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HRW에 따르면, 현지에 있는 인권 단체들도 사건을 조사하는데 정부의 통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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