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말하는 '국제개발협력'업계에 이것저것(진짜 딱 이것과 저것) 합쳐서 한 2년쯤 종사하고 있는데, 사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단어를 말하기조차 어색해하는 아직 업계와 서먹한 사람이다.
얼마 전 이 나라에 있는 업계 사람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을 일이 있었고, 나는 어쩌다 국제개발협력 일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좀 고민하다가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은 국제개발협력에 큰 관심이 있어서 여기에 취업한 게 아니고 동아프리카에 관심이 있어서 거기에 갈 수 있는 직장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그 질문은 나한테만 와서 그날 다른 사람들이 왜 이 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못 들었지만, 암튼 이날 저녁은 '불편한 식탁'(feat 김목인 "내가 당신과 직업이 같다고 해서 무슨 말인지 알잖아라고 말하지 마요")이었다. 여기저기서 이 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다들 너무 선하거나, 멋있거나, 확신에 차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미적지근한 내가 이상한가? 생각이 든다. 나에게 터놓고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 해줄 만큼 이 업계 내에 가까운 사람이 별로 없어서 못 들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자꾸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업계에 대해 마음의 벽을 쌓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언젠가 비슷한 이야길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업계가 하는 일이 우리 모두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두렵고(도대체 이 개발의 끝엔 무엇이 있나? 르완다가 한국이 되면 좋은 건가?), 내가 이룬 성과처럼 보이는 것들이 내일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사라지는 게 아닐까, 알 수 없는 미래에 큰 해악이 되는 거 아닐까 매일 생각하고(정말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스트레스...), 노동자가 활동가나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례들에 매번 분노하고, 선의·선교로 무장한 상당수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표정관리가 안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이 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내가 맡은 일(딱 맡은 일 그만큼)을 잘 해내려고 짜치는 실력에 아등바등 일한다. 여긴 실전이지 학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다른 사람의 삶에 피해를 주면서 내 경험을 쌓는 것이 괜찮은가?), 이 업이 다른 일에 비해서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동아프리카에 있을 수 있다는 점 빼고! 그건 정말 최고), 종교적 구원을 위해 이 일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만약 내 맡은 일을 소홀히 하거나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스스로 위안거리를 찾을 길 없이 자괴감으로 직행한다. 아프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정세랑이라는 작가의 인터뷰(보그 코리아 9월호에 실렸다고 함)를 만났고, 내가 지금 왜 이 업계에 있는지 설명할 언어를 발견했다. 이 작가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책도 인터뷰만큼 멋지면 행복하겠다.
"다른 작가들을 대표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별로 뜨겁지 않다. 문학은 나의 종교가 아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도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데면데면한 비즈니스 관계랄까? 거대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 멋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소설이라는 형태를 선호한다 뿐이지, 소설이 다른 이야기 장르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은 어쩐지 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저물어가는, 인기 없는 엔터테인먼트고 문학계 사람들은 그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평소에 믿어왔다. 문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뭐라도 된 것처럼 망나니 짓을 하다가 아예 범죄자가 되기 십상이다. 요 몇 년간 문학계사람들은 문학계가 자정이 안 되는 어두운 진창이란 걸 만천하에 밝히고 말았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야 문학을 잘할 수 있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깊이 이야기해봐야 할 시기다. 성실하게, 직업윤리를 고찰하고, 축축한 바닥을 좀 건조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정세랑 작가의 언어를 빌리면 나는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것이 나의 종교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건 나의 종교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일을 종사자 스스로가 혹은 제삼자가 특별하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여기 뉴비니까 '국제개발협력'이 아무것도 아니라고까지는 선언하지 않겠지만, 업계가 '개발도상국'(혹은 저소득국, 빈곤국 등등등)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역사와 진보와 발전 등등이 전체적인 흐름에서 국제개발은 별거 아닐지 모른다고, 혹은 별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지속가능성'이고 '오너십'이고 '참여'고 그런 거 아닌가?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망치고도 애써 정당화하거나, 뭘 하는지도 잘 모른 채 보람에만 취해있거나, '뭐라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은 그만두고, 직업윤리와 노동권과 제 역량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는 국제개발업이 '열정의 화신', '특이한 사람', '체인지 메이커', '혁신가',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사람' 등등만 살아남는 특별한 직장이 아닌, 제도와 체계가 존재하고 작동해서 조금은 건조하고 미지근하게, 이 일을 저스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오래갈 수 있는 직장이 될 수 있도록, 축축한 바닥이 조금은 건조해졌으면 좋겠다. 열정과 확신이 꼭 일을 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얼마 전 이 나라에 있는 업계 사람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을 일이 있었고, 나는 어쩌다 국제개발협력 일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좀 고민하다가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은 국제개발협력에 큰 관심이 있어서 여기에 취업한 게 아니고 동아프리카에 관심이 있어서 거기에 갈 수 있는 직장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그 질문은 나한테만 와서 그날 다른 사람들이 왜 이 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못 들었지만, 암튼 이날 저녁은 '불편한 식탁'(feat 김목인 "내가 당신과 직업이 같다고 해서 무슨 말인지 알잖아라고 말하지 마요")이었다. 여기저기서 이 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다들 너무 선하거나, 멋있거나, 확신에 차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미적지근한 내가 이상한가? 생각이 든다. 나에게 터놓고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 해줄 만큼 이 업계 내에 가까운 사람이 별로 없어서 못 들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자꾸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업계에 대해 마음의 벽을 쌓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언젠가 비슷한 이야길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업계가 하는 일이 우리 모두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두렵고(도대체 이 개발의 끝엔 무엇이 있나? 르완다가 한국이 되면 좋은 건가?), 내가 이룬 성과처럼 보이는 것들이 내일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사라지는 게 아닐까, 알 수 없는 미래에 큰 해악이 되는 거 아닐까 매일 생각하고(정말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스트레스...), 노동자가 활동가나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례들에 매번 분노하고, 선의·선교로 무장한 상당수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표정관리가 안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이 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내가 맡은 일(딱 맡은 일 그만큼)을 잘 해내려고 짜치는 실력에 아등바등 일한다. 여긴 실전이지 학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다른 사람의 삶에 피해를 주면서 내 경험을 쌓는 것이 괜찮은가?), 이 업이 다른 일에 비해서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동아프리카에 있을 수 있다는 점 빼고! 그건 정말 최고), 종교적 구원을 위해 이 일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만약 내 맡은 일을 소홀히 하거나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스스로 위안거리를 찾을 길 없이 자괴감으로 직행한다. 아프다.
아플땐 커피. 후예 마운틴 커피 내리는 중. ⓒ우승훈 |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정세랑이라는 작가의 인터뷰(보그 코리아 9월호에 실렸다고 함)를 만났고, 내가 지금 왜 이 업계에 있는지 설명할 언어를 발견했다. 이 작가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책도 인터뷰만큼 멋지면 행복하겠다.
"다른 작가들을 대표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별로 뜨겁지 않다. 문학은 나의 종교가 아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도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데면데면한 비즈니스 관계랄까? 거대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 멋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소설이라는 형태를 선호한다 뿐이지, 소설이 다른 이야기 장르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어떤 것이라는 인식은 어쩐지 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저물어가는, 인기 없는 엔터테인먼트고 문학계 사람들은 그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평소에 믿어왔다. 문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뭐라도 된 것처럼 망나니 짓을 하다가 아예 범죄자가 되기 십상이다. 요 몇 년간 문학계사람들은 문학계가 자정이 안 되는 어두운 진창이란 걸 만천하에 밝히고 말았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야 문학을 잘할 수 있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깊이 이야기해봐야 할 시기다. 성실하게, 직업윤리를 고찰하고, 축축한 바닥을 좀 건조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정세랑 작가의 언어를 빌리면 나는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것이 나의 종교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건 나의 종교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 일을 종사자 스스로가 혹은 제삼자가 특별하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여기 뉴비니까 '국제개발협력'이 아무것도 아니라고까지는 선언하지 않겠지만, 업계가 '개발도상국'(혹은 저소득국, 빈곤국 등등등)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역사와 진보와 발전 등등이 전체적인 흐름에서 국제개발은 별거 아닐지 모른다고, 혹은 별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지속가능성'이고 '오너십'이고 '참여'고 그런 거 아닌가?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을 망치고도 애써 정당화하거나, 뭘 하는지도 잘 모른 채 보람에만 취해있거나, '뭐라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은 그만두고, 직업윤리와 노동권과 제 역량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는 국제개발업이 '열정의 화신', '특이한 사람', '체인지 메이커', '혁신가',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사람' 등등만 살아남는 특별한 직장이 아닌, 제도와 체계가 존재하고 작동해서 조금은 건조하고 미지근하게, 이 일을 저스트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오래갈 수 있는 직장이 될 수 있도록, 축축한 바닥이 조금은 건조해졌으면 좋겠다. 열정과 확신이 꼭 일을 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정말 공감하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공감해주시는 분이 있다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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