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3월은 개강 시즌이다. SNS에 대학이야기가 꽃핀다. 대학생인 사람도 대학이야길 하고, 대학생이었던 사람도 대학생이었음 하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안하는 사람도 많다. 어쨋거나 3월을 맞아 옛날 영화 Accepted를 보았다. 이 영화는 대학이야기이기도 하고 대학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내용은 이렇다, 대학에 떨어진 백수가 부모님께 대학에 합격했다는 뻥을 쳤는데, 그게 일이 켜져 진짜 South Harmon Institute of Technology(S.H.I.T)라는 대학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 대학은 재미있다. 교직원이라곤 알바로 채용했다가 진짜 직원이 된 학장 단 한명이고, 커리큘럼도, 도서관도 없다. 다만 What do you want to learn?이라는 커다란 보드가 하나 있고, 학생들이 알아서 배우고싶은 것을 정하고 배운다. 정말 멋졌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또 다른 대학에서 더 공부하려고 하고 있어서인지, 영화가 끝나고서 대학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명문대라면 명문대고 아니라면 아니라는 서울의 모 사립대를 나왔다. 그 학교를 나온게 막 자랑스럽진 않지만 내가 그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지는 않는다. 어떤 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페이스북에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고 쓸 정도로 숨겨야 할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대학 나왔는데 안나온척 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온 학교는 나쁘지 않고, 때때로 유용하긴 하지만, 대학이름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억지로 숨기거나 억지로 나의 학맥을 찾아다니진 않는다.
학교의 명성이 있다면 그건 학교의 명성인거고, 내가 그 학교의 명성을 높일 순 있어도 학교가 나의 명성을 높여주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학위를 취득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다. 학위는 내 학문적 성실함이나 약간의 탁월함을 증명하기 때문에 자랑스럽고, 경험들은, 설명할 것도 없이 거의 내 모든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학위를 가지고서 앞으로 더 무언가 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내 인생의 중요한 성취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할 학교를 정할 때 고민했던 부분이다. 약간 더 무리해서 소위 말하는 '탑스쿨'에 갈 것이냐, 장학금도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하며 중위권 대학을 갈 것이냐의 갈래길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이때 든 생각이 탑스쿨은 '내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물론 '탑스쿨'에 가면 좋은게 많다. 학교 랭킹이 높은 것은 이유가 있을테니까, 하지만 랭킹 높은 학교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배울게 없다고 생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에게 더 좋은 학교를 선택했다. 그 학교가 나에게 제공해 줄 타이틀이 아닌, 내가 이뤄나갈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얼마전 대학원을 다니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대학생들'이야기를 했다. 꼰대처럼. 두 꼰대는 요즘 애들은 떠먹여줘도 안한다, 도대체 왜 학교 오는지 모르겠다. 이런식의 비난이었다. 괜시리 그날은 후배들이 맘에 안들었다. 아마도 대학가에 과잠바를 입은 무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던 시절이라 맘에 안들었을지도 모른다. 2007년, 2008년엔 나도 그 무리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꼰대가 되어 그들을 비난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교외활동을 아주 열심히 했다. 인턴도 많이 하고, 자원활동도 열심히 하러 다녔다. 그것이 '대학생만의 특권'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생이었기에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든다. 직장인이었으면 혹은 백수였다면 그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학년이 올라가고서 후배들이 대학생활에 대해 물으면, 나는 주로 이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다. '선배들이 시키는거 무턱대고 하지마라.' '학교 밖으로 나돌아라.' '혼자 되길 무서워하지 마라.'.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누가 나에게 무엇이든 가르쳐준다면, 그 사람이 선생이고, 누군가가 뭐든 배운다면 그 사람이 곧 학생이고, 그런 배움고 가르침의 공간은 어디든 학교고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속에서 대학 낙제생이 세운 그 대학처럼. 어쩌면 그런 대학이 진짜 '승인된' 대학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클리셰 중에 '인생이라는 학교'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