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I gave up African studies - Gavin Kitching / 나는 왜 아프리카학을 그만두는가


2000년, 가빈 킷칭 (Gavin Kitching)라는 교수가 갑자기 아프리카학계에 '사표'를 냈다. 그는 70년대와 80년대, 탄자니아와 케냐를 시작으로 가나, 세네갈, 잠비아 등 여러 아프리카국가들에서 연구를 진행했었던 초기 아프리카학자인데, 갑자기 '나는 왜 아프리카학을 그만두는가 (Why I gave up African Studies)'라는 제목의 글을 아프리카학 학술지에 기고한 것이다. (원문보기) 16년 전 글을 갑자기 읽게된건 윤상욱 외교관이 자신의 저서 '아프리카엔 아프리카카 없다'에서 잠깐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윤상욱 외교관이 어떤 맥락에서 이 글을 인용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이 글 자체는 기억에 남아있었다.

가빈 킷칭 교수. 사진: The Journal UK


그가 사표를 던지는 이유는 한마디로 '우울해서이다'. 그는 아프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끔찍하고,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죄책감이 만연한 아프리카학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던 그가, 옥스포드에서 아프리카 정치로 박사과정을 시작했을 때는 1969년,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던 희망가득한 시절이었다.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녜레레, 케냐의 조모 케냐타 등등 수많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국내외의 기대를 받으며 국가를 만들어 나갔다.  킷칭은 그 중에서도 녜레레의 아프리카 사회주의, '제 3의 길'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탄자니아로 날아가 녜레레의 정치를 연구했다. 이렇게 아프리카니스트의 길을 걷게된 킷칭은 1983년까지 약 15년동안 케냐, 가나, 세네갈, 잠비아 등을 방문하며 연구와, 자문을 계속했다. 하지만 1983년 케냐와 탄자니아 방문이 그의 마지막 아프리카 방문이었다.

줄리어스 녜레레

킷칭은 그가 아프리카를 연구하던 시절은 '아프리카에 대한 낙관과 희망이 비관과 냉소로 바뀌던 시절'이었다고 묘사했다. 독립 직후 전 대륙에 퍼졌던 희망은 이내 빈곤, 폭력, 독재 등 수많은 어려움들로 변했고, 이제 막 탄생한 국가들을 키우고 지켜야 할 정치 지도자들 중 몇몇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했다. 사람들 사이엔 '식민지 시절이 더 나았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때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연구하면서 정말 답해보고 싶었지만, 결국 답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아프리카학계가 답하지 못하고 있는 질문이 있다고 했다. '왜 아프리카의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책임감을 가져야할 국민들의 복지에 파괴적이고, 국가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들을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킷칭은 동남아시아의 '개발주의 국가 (Developmental State)'를 연구한 10년을 포함해서, 30년 동안 답을 찾아보려했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학계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아프리카의 문제가 반복되고, 아프리카학계가 진보하지 못하는 이유를 세계 구조적인 측면의 접근, 즉 '신 제국주의'같은 세계화의 측면에서가 아닌, 유럽의 죄책감과 아프리카의 의존성에서 찾고 있다. 그는 제국주의가 망쳐놓은 사람들과 그 유산이 청산되기 전까진 아프리카도, 아프리카학도 진보하지 못할것이기에, 슬프지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학을 떠난다고 선언했다.




이 글을 쓸 당시 아프리카를 15년도 더 전에 마지막으로 다녀왔다는 그가, 2000년에와서야 아프리카학을 그만둔다고 이야기하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처음엔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그가 이후 아시아의 개발주의 국가들을 연구했다는 이야기를 보곤, 그는 어쩌면 아프리카에서 느낀 질문을, 더 큰 범위에서 이해하고, 연구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강대국들 선진국들이 아닌 후발주자로서 아시아는 아프리카와 비슷한점이 많다.

그의 고민과 그가 느끼는 심정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아프리카학을 하지만 유럽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나같은 사람은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된다. 그리고 그 고민은 그때그때 다른 이유를 찾으며 끝나는 것 같다. 나는 때때로 내가 그리는 이상과 아프리카출신 친구들의 생각, 행동이 맞지 않아서 좌절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자고 하고 싶지만, 정작 아프리카 출신 친구들이 그런 편견을 이야기하는 주체일 때, 한국의 개발모델은 독재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이런식으로는 하지 말자고 하고 싶지만, 무엇보다도 경제 성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아프리카 친구가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심하게 고민된다. 그래서 그의 심정이 이해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왜 이런 고민의 끝이, 아프리카학을 포기하는 결론이 되는지는 이해가 안된다.

나는 아프리카학을 하는 사람은, 즉 아프리카니스트들은 아프리카의 변화를 이끌거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자꾸 훈수를 두고, 가리키려들고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지만, 이렇게 직접 역사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닌, 그들이 만들어나가는 역사를 지켜보고 기억하는 사람으로 머물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이런말을 하면 건방져 보이겠지만, 나는 아프리카니스트들이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서구중심적인 정치학계, 경제학계 등 아프리카학 밖에서 아프리카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그런 학문들이지 우리가 연구해야 할 대상인 아프리카인들을 '계몽'하여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탈 서구주의적으로 생각하기, 개입하려 바꾸려는 개입주의에서 벗어나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쓰여지지 않아 역사없는 대륙으로 비춰지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글로 옮기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록하기, 그들의 삶과 노래, 문화와 일상을 연구하기. 이게 아프리카니스트들이 할일이 아닐까? 적어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있다면, 이런 일들을 하고 싶다.






참고자료
Kitching, G. (2000) Why I Gave Up African Studies. Mots Pluriels Et Grands Thèmes De Notre Temps, 16.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