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1 BLF2016. Tales of Animals ⓒ우승훈 |
아이들을 위한 구연 동화로 시작해서 "채식주의자"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사인을 받고 셰익스피어 소설에서의 섹스와 죽음에 대한 강의로 끝났던 '브래드포드 문학 축제 (Bradford Literature Festival 2016)' 봉사활동 첫날.
'오 사람들이 이렇게 문학을 좋아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다른 행사들엔 사람들이 북적북적 했는데, 데보라 스미스 행사는 뭐가 문제였는지 청중이 한명밖에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바로 코 앞에서 (약간 마음이 상한 것 같았던) 데보라 스미스도 보고, 왜 한국소설 번역을 시작했는지, 한국 문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국에서의 한국번역은 어떤지 등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데보라 스미스는 아주 젊은 번역자이다. 그리고 스미스가 한국어 번역을 시작한 이유도, 특히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이유도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이다. 스미스는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자가 되기로 했었고,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것도 트위터와 타이밍이 많은 영향을 줬다고 했다. 스미스의 말을 듣고 있으니 왠지 내가 하는 것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용기가 나기도 했고, 앞으로는 이런식의 성공담? 미담? 뭐라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런식으로 좋은 일이 생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 행사는 맨부커상 인터네셔널 부문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 한명이 사회자처럼 같이 동석했는데, 그렇게 셋이서 맨부커상 수상 과정에서 한국인들에게 받은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일단 맨부커상의 심사과정은 크게 4단계인데, 일단 접수를 받고, 그 접수받은 소설들 중 심사위원단이 Longlist로 1차적으로 줄이고, 그 Longlist를 다시 Shortlist로 줄인 다음 수상작을 발표한다.
올해 Longlist에는 13작품이 있었는데, 채식주의자가 이 Longlist에 속하게 된 것 만으로도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있어서 굉장히 놀랐다고 했다. 한국에서 이 책이 출판된지 10년이 다되어가는데, 이 Longlist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판매량이 10배 넘게 뛰었고, 이런 일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이 마치 "한국이 드디어 해냈다!"라는 식으로 좋아했다고 신기해했는데, 나에겐 아주 익숙한 일이지만 이들에겐 아주 신기한 일로 보였나보다. 그리고 수상작으로 결정되고 상을 받던 날, 한강 작가와 데보라 스미스는 대기실에서 나오자마자 한국 기자들에게 둘러쌓여서 한참을 사진찍혔다고 했다. 질문도 딱히 없이 사진만 계속 찍혔다고 했다. '역시'라는 생각만 든다.
앞서도 말했지만, 행사 분위기는 상당히 우울했는데, 심사위원장 아저씨가 무려 책 낭독까지 하며 분위기를 띄우려 하시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럼에도 스미스의 기분은 딱히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하고 싶은게 있었는데 질문도 못했다. 아주 간단한거였는데 해볼껄 그랬다. 한국말도 걸어보고싶었는데 기분이 안좋아보여서 못했다.
어쨌거나, 데보라 스미스를 만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부터 채식주의자의 영어판을 읽고 있다.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은 정말 훌륭하다. 글을 읽는 내내 등장 인물들의 감정이나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 주변 풍경 등등이 생생하게 잘 그려졌다. 이게 영국인들에게도 그렇게 이해가 잘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한국 소설을 한국어로 읽는 것 처럼 몰입할 수 있었다. 번역도 번역이지만, 소설 자체가 대단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스스로 짊어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기 시작하고, 그 거부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묘한 흥분이 느껴진다. 끝까지 읽었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이 책을 다 읽게되면 내가 처음으로 완독하는 '영어로 쓰인 소설'이 된다. 여러모로 특별한 책이 될 것 같다.
2016.5.21. BLF2016. Sex and Death in Shakespeare. ⓒ우승훈 |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사인 ⓒ우승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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