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르완다의 한국 NGO 직원분들을 만날 일이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굿네이버스에 노동조합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굿네이버스에는 별 감정이 없었는데, 그 이야길 듣자마자 호감이 많이 생겼다. 실질적으로 노동자 권익을 위하는 노조인지까지는 모르지만, 일단 있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초, 이런 일이 있었다. 2016년 말 처음 맺었던 1년 몇 개월짜리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 협상을 하는데, 올해부터 휴가 지침이 바뀌어 휴가 일수가 국내, 국외 각각 정해져 있었던 것이 국내·외 통합하면서 총 일수가 줄었다고 통보받은 것이다. 휴가지침이 나에게 더 손해인 방향으로 바뀌는 동안 그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스타벅스에 일할 땐 취업규칙이 바뀔 때 일종의 회람 형식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왜 이 기관에서는 그런 절차가 없었던 것인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아직도 너무 이상하다. 그럼 왜 그런데도 재계약을 했는가? 사업소에 정도 들었고, 나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암튼 한동안 읽었던 책은 제목이 아주 재밌다. "자비없네 잡이없어". 사실 제목 때문에 샀는데 내용은 제목만큼은 재미있지 않다. 이 책을 막 즐겁게 즐길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을 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와 관련이 크다. "논의의 대표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2030세대의 노동에 대한 연구 및 조사, 출간 작업 경험이 있으면서 스스로가 2030세대이기도 한 연구자들을 모았다"며, 공인노무사, 처음부터 특정 키워드를 잡고 일해온 사람, 1~3섹터를 두루 경험한 사람, 시사잡지 기자, 대학 교직원 출신의 연구 노동자, 박사 수료 문화 평론가, 여러 사회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프로 N잡러, 언론사 기자 출신 연구원을 모아다 그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2030세대의 노동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모은 사람들이 내 기준으로는 특출난 사람, '힙'한 사람들이라서 읽으면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프로젝트의 구성원을 봤을 때, 이 책은 2030세대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분석과 정책제안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 한 참여자는 "저는 세대를 대표할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대기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비영리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으니까요."라고 고백하며,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고민하는 부분들이 겹치더라고요. '이 일이 나와 맞는 일인가?' '일을 하면서 소진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등등이요."라고 말하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포지션은 이 정도인 것 같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대표성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2030세대의 노동 문제를 분석해보려고 한 사람.
대표성이 좀 애매하다보니 중간중간 너무 평면적으로 문제를 보거나,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가치 지향 조직에 일하는 2030세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치 지향 조직에 들어가는 젊은 세대는 기업보다는 이쪽이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이고, 노동자의 권리도 잘 지켜 줄 거라고 기대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까 갈등이 생기고, 갈등 양상도 기업에서보다 더 복잡해요. 차라리 단순하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사장님과 직원으로 만났으면 협상이 될 수도 있죠. 양쪽이 추구하는 가치가 금전적으로 환산된다는 면에서도 일치가 되고요"라고 말하는데, 영리와 비영리를 너무 단순한 이분법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리기업의 의사결정구조도 복잡하다는건 기업들의 비이성적 행태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그리고 "가치 지향 조직을 선택한 이들이 실망하는 결정적 요인은 경제적 측면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감내할 각오로 온다"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 부분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높은 월급은 포기했을 수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마저 예상하고 일을 시작한다고 일반화 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2030세대는 임금이나 안정성보다는 조직문화, 개인의 성장 등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이것이 2030세대가 유독 노동시장에서 고생하는 이유로 나오는데, 2030을 떠나서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냥 다 좋은 회사가 좋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임금 조건도 좋고, 사내문화도 좋은 그런 회사. 굳이 설문조사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한국 노동 시장에 특히 결여된 것, 조직문화나 개인의 성장을 선택하고.
몇몇 거리감이 느껴지는 내용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공감하면서 읽었다.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노동 문제 대부분이 책에서 언급된다. 예를 들어서, 2030세대는 조직이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둔다는 것, 조직에서 보호받고 존중받아본 경험이 극히 드물다는 것, 취업 시장이 구직자들에게 너무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 등이 나와 있고, 끝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쭉 적어놨다. 그런데 2030세대를 위한 노동 환경 개혁, 혹은 개선에 대한 제안은 있지만, 당사자인 우리가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할지에 대해선, 노조를 해라 정도만 나와 있어서, 이 책의 타깃은 누구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타깃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의 끝에 마침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스무 살인, 혹은 더 어린 세대가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좀 더 만족스럽게 자기 일을 시작하고 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야 한다. 2030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40대 이상 세대들도 그런 변화를 간절히 원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 그래야 불과 십수 년 후면 사회에 나갈 그들의 자녀도 각자가 원하는 '좋은 일'을 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계기로 쉽지 않은 여정에 선뜻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제목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약간 아쉬웠던 책. 노동 문제로 마음이 복잡한 사람은 한 번쯤 쓱 읽어보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친구들과 푸념처럼 하는 이야길 조금 더 세련되게 적어놓았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분이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안수찬 기자)라는 기사를 추천해주셨다. 책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주제인 청년의 노동과 빈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데, 책과는 전제와 사례가 완전히 다른 점이 흥미로웠다. 책의 기획자는 만 열여덟에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내내 잡무만 하고, 대졸과 비교당하며 차별당하고, 성희롱에 시달리는 한 여성의 사연을 듣고 "뭐라도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책의 내용은 전문성을 갖기 위해 고심하거나 워라벨을 추구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대졸, 그것도 상위권 대학 대졸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표지에는 2030세대라고 적어 놨고... 그래서 읽으면서 좀 불편하고,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자비없네 잡이없어: 생존, 그 이상을 꿈꾸는 2030세대 노동 이야기. 희망제작소. 2018. |
암튼 한동안 읽었던 책은 제목이 아주 재밌다. "자비없네 잡이없어". 사실 제목 때문에 샀는데 내용은 제목만큼은 재미있지 않다. 이 책을 막 즐겁게 즐길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을 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와 관련이 크다. "논의의 대표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2030세대의 노동에 대한 연구 및 조사, 출간 작업 경험이 있으면서 스스로가 2030세대이기도 한 연구자들을 모았다"며, 공인노무사, 처음부터 특정 키워드를 잡고 일해온 사람, 1~3섹터를 두루 경험한 사람, 시사잡지 기자, 대학 교직원 출신의 연구 노동자, 박사 수료 문화 평론가, 여러 사회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프로 N잡러, 언론사 기자 출신 연구원을 모아다 그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2030세대의 노동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모은 사람들이 내 기준으로는 특출난 사람, '힙'한 사람들이라서 읽으면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프로젝트의 구성원을 봤을 때, 이 책은 2030세대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분석과 정책제안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 한 참여자는 "저는 세대를 대표할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대기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비영리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으니까요."라고 고백하며,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고민하는 부분들이 겹치더라고요. '이 일이 나와 맞는 일인가?' '일을 하면서 소진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등등이요."라고 말하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포지션은 이 정도인 것 같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대표성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2030세대의 노동 문제를 분석해보려고 한 사람.
대표성이 좀 애매하다보니 중간중간 너무 평면적으로 문제를 보거나,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가치 지향 조직에 일하는 2030세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치 지향 조직에 들어가는 젊은 세대는 기업보다는 이쪽이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이고, 노동자의 권리도 잘 지켜 줄 거라고 기대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까 갈등이 생기고, 갈등 양상도 기업에서보다 더 복잡해요. 차라리 단순하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사장님과 직원으로 만났으면 협상이 될 수도 있죠. 양쪽이 추구하는 가치가 금전적으로 환산된다는 면에서도 일치가 되고요"라고 말하는데, 영리와 비영리를 너무 단순한 이분법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리기업의 의사결정구조도 복잡하다는건 기업들의 비이성적 행태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그리고 "가치 지향 조직을 선택한 이들이 실망하는 결정적 요인은 경제적 측면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감내할 각오로 온다"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 부분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높은 월급은 포기했을 수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마저 예상하고 일을 시작한다고 일반화 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2030세대는 임금이나 안정성보다는 조직문화, 개인의 성장 등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이것이 2030세대가 유독 노동시장에서 고생하는 이유로 나오는데, 2030을 떠나서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냥 다 좋은 회사가 좋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임금 조건도 좋고, 사내문화도 좋은 그런 회사. 굳이 설문조사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한국 노동 시장에 특히 결여된 것, 조직문화나 개인의 성장을 선택하고.
몇몇 거리감이 느껴지는 내용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공감하면서 읽었다.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노동 문제 대부분이 책에서 언급된다. 예를 들어서, 2030세대는 조직이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둔다는 것, 조직에서 보호받고 존중받아본 경험이 극히 드물다는 것, 취업 시장이 구직자들에게 너무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 등이 나와 있고, 끝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쭉 적어놨다. 그런데 2030세대를 위한 노동 환경 개혁, 혹은 개선에 대한 제안은 있지만, 당사자인 우리가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할지에 대해선, 노조를 해라 정도만 나와 있어서, 이 책의 타깃은 누구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타깃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의 끝에 마침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스무 살인, 혹은 더 어린 세대가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좀 더 만족스럽게 자기 일을 시작하고 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야 한다. 2030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40대 이상 세대들도 그런 변화를 간절히 원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 그래야 불과 십수 년 후면 사회에 나갈 그들의 자녀도 각자가 원하는 '좋은 일'을 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계기로 쉽지 않은 여정에 선뜻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제목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약간 아쉬웠던 책. 노동 문제로 마음이 복잡한 사람은 한 번쯤 쓱 읽어보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친구들과 푸념처럼 하는 이야길 조금 더 세련되게 적어놓았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분이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안수찬 기자)라는 기사를 추천해주셨다. 책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주제인 청년의 노동과 빈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데, 책과는 전제와 사례가 완전히 다른 점이 흥미로웠다. 책의 기획자는 만 열여덟에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내내 잡무만 하고, 대졸과 비교당하며 차별당하고, 성희롱에 시달리는 한 여성의 사연을 듣고 "뭐라도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책의 내용은 전문성을 갖기 위해 고심하거나 워라벨을 추구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대졸, 그것도 상위권 대학 대졸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표지에는 2030세대라고 적어 놨고... 그래서 읽으면서 좀 불편하고,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