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정치적 공간과, 세월호유가족 간담회.



그래도 정외과를 다녔으니, 그동안 배운 사람들 중에서 어느 학자가 제일 좋았냐고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한나 아렌트를 꼽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생일은 최근이었습니다. 10월 14일, 108번째 생신을 맞으셨는데요. 물론 하늘나라에서 맞는 생신이시겠지만, 그날은 한나 아렌트 생각을 많이 했고, 페이스북에도 기나긴 글을 썻네요. 그 글을 블로그에도 보관하려고 복사해 왔습니다. 글을 보면, 계속해서 한나 아렌트를 한나 아렌트나 아렌트라고 쓰고 있는데요, 왠지 그 사람을 '그녀'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렌트가 여성 정치이론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아렌트를 존경하는 이유는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큰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도 아니고, 정치이론가들 중엔 드문 여성이기 때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책을 본지도 오래라 한나 아렌트하면 매 사진마다 아렌트와 함께 등장하는 담배가 먼저 생각날 정도로 기억은 흐릿합니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도발적인 개념을 제시한 것은 사회적 일들을 볼때마다 종종 기억이 납니다.

독일 출생으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최종 실무자였던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며,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모두가 아이히만을 악마라고 욕하고 탓할 때, 아렌트는 그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이해하려 노력했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지요, 이 대목에서 이 사람은 진정한 학자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악하거나 선한게 아니라, 그의 '생각없음'이 이런 참사를 일으켰다는 설명을 내놓아 당대에 큰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다시 말하면, 당시대의 흐름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보통'사람이 '평범한'일을 수행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저는 '악의 평범성'이 아주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수많은 인간의 악행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졸업생이지만, 오랜만에 학교에 갔습니다. 오늘 학교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세월호 참사도 벌서 반년 가까이 흘렀더군요, 어느새 세월호 참사는 기소권과 수사권과 단식 몇일째와 오늘 집회에는 몇명에 모였습니다와 전경 숫자와 그런 것들로 덮였고, 광화문 앞 유족들의 농성장은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과 원래 그곳에 있었는 듯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실종상태인 10명의 사람들과 단식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정권의 불통에 분통터지는 유가족들의 심정에 대한 공감은 어디갔는지 느껴지지도 않았던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무뎌진 줄 알았는데, 유가족분들의 육성을 들으니 눈물이 났습니다.


간담회에서 '정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도대체 정치가 뭐냐, 정치가가 뭐냐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정치학도라 이 단어에 민감할 수 밖에 없더군요. 이때 다시 한나 아렌트가 생각났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두고서, 플라톤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이데아를 찾아 나섰고, 절대적인 진리에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법 제도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플라톤을 두고서 최초로 정치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역사상 정치가 온전히 존재했던 일은 아주 드물다고 했는데요, 정치적 공간에서라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하고 각자의 진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런 정치적인 것들을 침해하거나 대체하는 법 제도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정치와 멀어지는 이유도 앞선 아렌트의 설명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정치적인 것을 이야기하길 꺼리고 어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데 대단치 않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내재한 정치적인 본성을 깨닫고 정치적으로 살아가지 아니할 수 없는 사람들은 모 웹툰에서 표현하듯 송곳처럼, 그들만의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도 그렇다. 무언가에 의문을 느끼고 질문을 하고 요구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는 일인데, 세상의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 말하고,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인데 왕따를 당합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큰 이슈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가족들도 직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어도, 앞으로 갈길은 엄청나게 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끝이 당최 안보이는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정말 대화를 하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라도 붙잡고, 이렇게 생판 남인 대학생들에게까지 찾아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간담회를 지켜보며 아렌트가 말한 정치적 공간이라면 이런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정치적 공간을 더 넓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고 남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뿐이면 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TUMA

Seoul, Korea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철학 전공했습니다. 최근 관심사는 아프리카와 커피입니다. 아프리카땅은 두번 밟아보았습니다. 모 프렌차이즈 카페의 바리스타로 일합니다. 아프리카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