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C의 미툼바 규제 결정,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2일 EAC(East African Community)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중고 의류 수입 금지의 탄자니아 국내 시행이 미뤄졌다. EAC 정상들이 결정을 바꾸지 않는 이상 3년 이내에 금지를 시행하게 되어 있어 임시로 미룬 것에 불과하지만, 탄자니아 내 수많은 중고 의류상들이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되는 일은 막았다. (EAC 정상회담 관련 글)

나는 경제나 무역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탄자니아에 있을 때 했던 일 중 하나가 미툼바와 경쟁하는 것이었기에 이번 EAC의 결정에 관심이 많이 갔다. 내가 일했던 곳은 여성들에게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나아가 소득창출을 목표로 하는 사업장이었는데, 주 교육 내용이 재봉기술, 그리고 천 염색기술이었기에 학생들이 만든 생산품을 팔기 위해 시장조사를 해야만 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사업장이고, 퀄리티가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높은 도심 지역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웠고, 소득수준이 낮은 사업장 주변 커뮤니티에서는 미툼바가 의류 가격을 확 낮춰놓아서 이윤을 낼만한 가격으론 경쟁할 수가 없어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나름의 차별화로 어느정도 판매를 이어나가긴 했지만, 미툼바는 큰 장애물이었다.


탄자니아 탕가의 미툼바 시장 풍경. ⓒ우승훈


정상회담에서 동아프리카 정상들은 지역 내 면화 농가와 (대표적인 곳이 케냐의 Nyakach) 방직 산업 보호를 위해 중고 의류를 금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중고 의류 금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성장시키는 방법일까?

중고 의류가 금지되면 가장 처음 타격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중고 의류상들이다. 탄자니아만 해도 최소 수천의 사람들이 중고 의류 유통에 연관되어 있을텐데, 중고 의류 수입이 금지되면, 그 당사자들과 식구들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중고 의류의 주된 고객인 저소득층 사람들의 의류구매에 추가 지출이 발생하여 가계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지역 내 의류산업 종사자들은 이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보지만, 세계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EAC 정상들이 금지하고자 하는 것은 중고 의류이다. 다시말해 새 옷은 수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탄자니아나 케냐 등에서 새 의류를 생산한다고 해도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생산한 새 옷보다 가격 경쟁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규모 방직 산업은 중국이나 인도 자본에 잠식당해 성장할 만한 국내 자본 자체가 많지 않은 것도 문제다. 결국 중고 의류가 빠져나간 시장은 외국 자본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탄자니아 탕가의 미툼바 시장 풍경  ⓒ우승훈
1960년대, 70년대에만 해도 탄자니아의 섬유산업은 국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만큼 활성화 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경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당시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GDP의 25%, 그리고 노동가능인구의 25%를 고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기술의 부족으로 양복 등의 특정 의류는 생산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 탄자니아 경제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섬유산업도 악영향을 받았다. 뒤이은 1994-95년의 경제개방정책은 섬유산업계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개방된 시장에서 탄자니아 섬유산업은 전력문제와 탄자니아 실링의 평가절하 등의 이유로 수입 의류에 대한 경쟁력가질 수 없었고, 기계 부품조차 사기 어려운 형편이 되며 붕괴했다.


1980년대, 탄자니아 경제 불황으로 의류 공급이 부족해지자, 개인들이 만드는 바틱이나 염색 천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수제 천은 가격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은 포대를 입고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의류 부족 상황에서, 중고 의류가 밀수되어 유통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점점 중고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져갔다.

바틱, 염색천. 염색은 탄자니아에서 했지만, 주 재료는 중국 자본이 투자된 공장에서 만든 천이다.
ⓒ우승훈

탄자니아에서는 중고 의류를 미툼바(Mtumba의 복수형 Mitumba)라고 부른다. 원래 뜻은 보따리라는 뜻인데, 상인들이 보따리로 들여오고 들고다닌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이 용어는 80년대 중고의류가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용어인데, 그 전엔 중고 의류를 Kafa Ulaya라고 불렀다고 한다. 스와힐리어로는 "유럽의 시체"정도로 번역되는 뜻인데, 죽은사람의 옷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단어 사용의 변화에서 중고 의류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탄자니아 탕가의 미툼바 시장 풍경  ⓒ우승훈
1990년대 경제자유화는 탄자니아의 섬유산업을 붕괴시켰지만, 반대로 미툼바 무역을 양지로 끌어올려 전성기를 맞게 하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미툼바는 가난한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옷이 되었다. 미툼바가 중고라고 해도 싸구려만 있는건 아니다. 한벌에 한국돈으로 300원씩 하는 티셔츠도 있지만, 몇 만원씩에 팔리는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 의류도 있고, 등산화, 작업화 같은 기능성 제품도 있다. 다레살람의 한 시장에서 괜찮은 브랜드의 고어택스 등산화를 꽤 많은 돈을 주고 샀었는데, 그걸 신고 킬리만자로도 다녀오고, 아직도 잘 신고 있다.

미툼바에 대해 조사하다가 알게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한국이 세계에서 4번째로 중고 의류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가장 큰 교역국은 동남아 국가들이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의 중고의류가 나이지리아, 베닝, 탄자니아 등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통계를 보니 탄자니아에 있을 때 보았던 한국 교복들과 한국 유치원 가방들이 이해가 된다. 요즘 국내에서 뜸해진 옷 물려입기가, 국경을 넘어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툼바는 크게 두가지 경로로 들어온다. 자선 기관에 의한 기부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무역업자들에 의해 들어오기도 한다. 무역업자들은 세금을 내지만, 자선 기관으로 들어오는 미툼바에는 전혀 세금이 붙지 않는데, 자선 기관들이 들여오는 미툼바에 대한 과세나, 규제를 먼저 검토해 보는게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안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도,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에서 아프리카의 국내 산업이 성장하는 방법은 보호무역뿐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서민들의 생필품이라 할 수 있는 미툼바 규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Kinabo, O. (2004) The Textile Industry and the Mitumba Market in Tanzania
Rodgers, L. (2015) Where do your old clothes go?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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