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D+214 / 대학원 2학기를 2주 남겨두고서,



영국가는 비행기에 오르고 214일이 지났다. 나는 영국에서 석사(MA)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과정이 1년안에 끝난다.  각각 수업하는 주가 12주 정도 되는 1학기와 2학기를 마치는 약 4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논문을 쓰는 시간이 주어진다. 지금은 4월 초, 코스워크의 끝자락에 있다. 어제는 논문 주제에 대한 아웃라인을 지도교수님께 보냈다. 야당과 민주주의 공고화의 관계를 탄자니아를 사례로 써보려고 한다. 사실 내 석사 프로그램명인 '아프리카 평화 갈등학'이랑 얼마나 잘 맞는 주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 주제가 마음에 들어와버려서 이걸로 일단 쓰겠다고 보냈다. 다음주 월요일에 교수님과 약속을 잡아두었으니 그때 더 확실히 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이러고 있는게 좀 쌩뚱맞다. 원래 영어에 울렁증이 있어서 영국에 유학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졸업 한학기를 남기고 탄자니아에 갔다 돌아왔을 때 까지만 해도 유학 생각은 없었다. 그땐... 갑자기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취업을 해보려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개발학으로 영국 유학을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꺼냈고, 영국은 일년이면 석사를 할 수 있구나, 라는 걸 알게되어 나도 갑자기 유학을 덜컥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하고선 별 대책도 없이 졸업해서 대학원을 준비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유학 어떻게 준비하는지 조언 구할 곳도 마땅치 않아 인터넷도 많이 검색해보고, 유학박람회라는 곳에 가서 외국인 학교 직원과 뻘쭘하게 앉아서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유학박람회를 통해 지금 다니는 학교를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 다니는 학교는 처음엔 전혀 몰랐다. 인터넷에서 조회할 수 있는 학교 랭킹 같은걸로 계속 찾아다니다보니, 중위권 학교는 찾지 못했던 것이다.

학교는 4군데 정도 지원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지원한 학교에서는 모두 합격을 받았다. 단, 상위 3군데 학교는 더 높은 영어성적이나, 프리세션이라는 영어코스를 듣는 조건을 달았고, 지금 다니는 이 학교는 조건 대신 장학금을 붙여 합격시켜주었다. 장학금도 준다고 하고, 도시 물가도 싸다고 해서, 브래드포드 대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다. 가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프리카학으로는 세계 최고로 치는 SOAS같은데서 공부하면 더 좋았을까? 어릴적부터 동경하던 에든버러에서 공부했으면 더 좋았을까? 생각이 항상 든다. 학교가 상위권에 있는 건 그럴만한 이유와 혜택이 있는거고, 중위권에 있는 것도 그만큼의 이유와 혜택이 있는거니까,

브래드포드대학교 주 건물. 리치몬드관 ⓒ우승훈

그래도 원래 그렇게 탁월한 인간이 아니라서, 나의 능력에 넘쳤으면 넘쳤지, 부족한 건 없이 지금껏 다닌 것 같다.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교수님들도, 같이 수업듣는 친구들도 다들 대단해 보여서, 가끔은 이들과 같이 강의실에 있는게 뿌듯할때도 있었다. 낯도 가리고 영어도 좀 쑥쓰러워하고 해서 많이 친해지지 못한건 정말 아쉽다.


(영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건, 하기 나름이구나, 라는 점이었다. 1학기 초반엔 수업 못알아들을까봐, 수업가서 한마디라도 해보려고 예습도 열심히하고, 할말도 준비하고 그러느라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다가 1학기 말쯤부턴 좀 힘이 빠져서 약간 준비를 덜 했었는데, 그래도 뭐 나쁘지 않게 수업엔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예습을 하는게 더 많이 배우긴 한다. 그러고 짧은 방학을 보내고 2학기에 들어왔다. 2학기는 과제 제출이 빨라서 학기 내내 과제 압박에 시달렸다. 그렇게 시달리다가, 너무 불행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해 버렸다. 그러고선 대신 내가 쓰고 싶은 논문에 대해서, 내가 더 공부해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내가 블로그에 쓰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시간을 더 썼더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잘 되고, 과제 준비도 대체로 잘 되고 있다. (이 속도라면 제출은 문제가 없다. 질은 별개 문제다.)

'영어로 공부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알파벳 읽을 줄 알면 그때부턴 시간싸움, 집중령 싸움인 것 같다. 대화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읽고 듣고 쓰는게 나아지는 동안 말하기는 참 나아지지가 않아서 여전히 불편하다. 이게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날은 잘 안되고 하는게 참 희안하다.

영어로 말하기 말고 또 힘든거라면 영국의 구린날씨와 맛없는 음식이 있다. 어말 어쩜 이러지 싶다. 그리고 가장 큰 힘든건 아마 '외로움' 인것 같다. 외국에서 이렇게 오래 사는게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허니문'이 끝나면 외로움이 스멀스멀 커진다. 이번엔 탄자니아에 있을 때 보다 허니문이 일찍 끝났다. 아무래도 탄자니아에서 일을 할 땐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있었고, 오히려 여기서보다 한국사람들이랑 더 잘 교류했었던 것 같다. 여기서도 사람들과 같이 수업듣고 공부하고 하지만,어쨌든 에세이쓰고 논문준비하는건 혼자하는 작업이 되니까,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누구든 아프리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우리말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마 외로워서 블로그에 더 글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외로움이야 사실 어디든 따라다니는 녀석이니까, 그런가보다 한다.


이제 2주가 지나면 2학기가 끝나서 더이상 수업이 없고, 3주가 지나면 아마 과제들도 다 제출해서 거의 모든 시간이 내가 쓰기 나름이 될 것 같다. 일주일 내내 하루종일 논문 준비만 할 수 없으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해 봤다.

1순위는 당연히 논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재미있는 논문을 쓰고 싶다.

2순위는 '아프리카니스트'에 대한 블로그 연재다. '아프리카니스트'라고 하면 크게 두가지 사람들을 일컫는다. '범 아프리카주의자'들과 '아프리카 연구자'들. 둘 다 관심이 많다. '범 아프리카주의자'들을 공부하는건 '아프리카'라는 개념의 실체를 찾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연구자'들을 공부하는 건 학문적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나서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많은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을 때, 개괄적으로라도 좀 정리해 보고 싶다.

3순위는 외국어 공부다. 영어도 영어지만, 1학기부터 배워서 이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아랍어와 서서히 까먹어가는게 느껴지는 스와힐리어를 틈틈히 공부하고 정리해 두려고 한다. 아랍어를 배운건 대학원 다니면서 정말 잘한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글자로 변하는 기분은 정말 좋다!



이제 5개월 정도 남았다. 5개월 이후도 걱정이 많이 된다.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열심히하면 힌트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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