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200일 일기.

오늘 기분이 이상하다 했더니 르완다 처음 도착한 날로부터 딱 200일 되는 날이었다. 지난 6개월은 낯선 것들과 마주하면서 나를 재확인하고 재발견한 시간이었다.

낯설었던 것은 무언가를 대표하고, 사업을 관리하고,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를 채용하고, 내 덕이 아닌 것들에 대해 감사 인사를 받고,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일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를 채용하신 분들에게는 말씀 못드린 것 같은데, 나는 내가 현장 책임자로 가게 된다는 것을 면접장 가서 알았다. 채용되어 르완다에 가면 소장이 있고 내가 중간 관리자로 가게 되는 줄 알았는데 면접장가니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고, 나를 채용하신 분들은 참 용감하고 취향이 특이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시간, 사무실 앞. ⓒ우승훈


재확인했던 나는, 이런 일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것이다. 나는 앞에 매번 나서야 하는 주연보다는 화면 구석에서 연기 디렉팅도 없고 잘 보이지도 않아서 마음대로 내면 연기를 할 수 있는 조연이고 싶고, 내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한 것도 없는데 감사 인사를 듣는 게 부끄럽고,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옳은 일인가에 대해 의문도 끊임없이 들고, 내가 자격이 부족하지만 남성이고 한국인이라서 이 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석연찮은 마음도 든다. 나는 사실 이 업계에 대해 나쁜 소리를 많이 해놔서 관련 직장에 지원하면서 고민이 많았지만, 아프리카 덕질을 더 잘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일해야 겠다는 생각과, 이젠 정말 돈을 좀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뻔뻔하게 돌아왔다. 그래서 다르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지만, 이런 욕심은 동시에 큰 부담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 업계의 일의 성격이 나에겐 부담이다. 내가 이 업계 경력이 미천하지만, 이 짧은 경력에도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소위 국제개발협력이라고 불리는 일들은 어디 희망TV에 나오는 것처럼, 저명인사들이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들처럼 아름답거나 선하기만 한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에, 그리고 다양한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공동체에 개입하는 일이니만큼 아주아주아주 복잡하며, 특히 나 같은 외국인들 대다수는 그 사회의 맥락을 잘 모르고(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리고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적으로 조언해주는 존재가 드물기 때문에 문제를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고 전혀 엉뚱한 일을 벌여 세금/후원금을 낭비하게 될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해를 끼치거나, 해악의 씨앗을 심었으면서 집에 가는 날까지 '내가 정말 여기를 위해 많은 것을 했지!'라며 해맑을지도 모른다(개인적으로는 마지막게 최악). 나는 내가 그럴까 봐 너무너무 무섭다.

이런 어려움과 압박 속에서도 나는 도망가지 않았고, 이점은 꽤 대견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재발견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인지, 내 안에 원래 이런 부분이 있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앞에 나서야 할 땐 빼지 않고 나서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대표했고, 원래 좀 자기만 잘났고 고집이 좀 더러운데, 요즘 차기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고, 잘 모르니까 이리저리 공부도 하고, 내가 별로 잘한 것도 없는데 감사 인사를 많이 들으니 서비스라도 잘하자는 생각으로 어울려서 춤도 추고 스킨십도 많이 하고 사업 지역 근처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로 다닌다. 요새 내가 나오는 사진을 자주 보게 되는데, 가끔은 내가 낯설다.

6개월, 배운 것도 많고,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들도 있지만 내가 이 일을 아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원래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기도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들로 얻는 권력이 불편하고, 웃는 얼굴로 시나브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될까 봐 무섭다. 그래도 일단 내가 여기 있으니 책임감 느끼고 잘 하는 수밖에 달리 수가 없어 보인다. 더 많이 듣고 공부하고 고민하며 지내야겠다. 근데 오늘은 쉬는날이라고 하루의 반은 침대에서 보낸 것 같다. 오늘 영드 디스이즈잉글랜드86을 봤는데, 막 흥겨운 드라마는 아니지만,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 이 글은 6월 12에 작성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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