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보다 못한 나라"라는 말이 욕인 나라. 대한민국.


나는 주기적으로 여러 소셜미디어에 '르완다'나 '탄자니아'를 검색해 본다. 원래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찾고싶어서(못찾고 있다) 검색을 해보는건데, 매번 화만 난다.


출처: 네이버 뉴스 화면 갈무리


얼마전엔 트위터에 한국의 부패지수가 르완다 못하다고 분노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고, 심지어 프레시안에는 '국제관계학박사'라는 사람이 이런 글(아래 링크)도 썼다. 이 칼럼에 언급된 '부패인식지수'를 살펴보니, 한국(52위) 위로 모리셔스(르완다와 같은 50위)와 카보베르데(38위) 보츠와나(32위)도 있었는데, 다른 나라들이 아프리카인줄 몰랐던건지 특별히 르완다를 싫어하는지 르완다만 언급했다. "아프리카 르완다가 50위고, 우리가 부패의 상징 국가로 쉽게 간주하는 중국은 79위였다." 르완다의 부패 상황에 대해서 짧은 분석이라도 안할거면 왜 저런 언급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더군다나 '국제관계학 박사'라는 사람이 말이다. 그냥 분량은 채우고 싶고, 알아보기는 귀찮기 때문일까? 나도 좀 게을러서 자세히 알아보긴 힘들지만, 르완다의 부패인식지수 순위가 한국보다 높은 것에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언듯 생각해 보건데, (좋은 일은 아니지만)강력한 권력을 쥔 카가메 대통령의 부패 척결 의지도 한몫 했을 것이다.


작년에 국경없는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가 발표되었을때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70위에 랭크된 한국 위로 세네갈(65위)와 말라위(66위)가 있었는데, 당시에도 '아프리카보다도 못한 한국 언론 자유'라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물론 이 나라들의 언론 상황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한국의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언론 자유를 위해서 투쟁하는 것처럼, 아프리카 각국의 많은 저널리스트들도 투쟁했을거란 생각을 못하는걸까? 그리고 약 1년뒤,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이 지수를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 지수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 31위로 아시아 최고였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작년에 70위까지 내려갔습니다. 아프리카 국가 수준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전후사정 따지지도 않고 그저 '아프리카 수준'이면 수치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이 외에도 언론과 정치인들이 '아프리카'를 욕처럼 사용한 사례는 많다. 이런 소식을 접할때마다 화가 나지만, 사실 더 무서운 것은 한국의 이익이 걸려있을 때의 아프리카는 '블루오션'이고 한국 청년의 미래 일자리가(혹은 은퇴자들의 일자리가) 있는 곳이라고 묘사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한국보다 열등하고, 언제까지고 우리보다 열등하게 정체되어있지만, 우리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것이라는 인식, 식민주의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런 일도 있었다. 을유문화사가 일본 작가의 책 「논마마로 살아가기 :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그녀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을 카드뉴스 형식으로 홍보하면서,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은 아직 내 아이가 태어나 살기에 행복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와 "인가 유치원의 절대수와 정원이 입학 희망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입학을 거절당한 후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이른바 '대기 아동'이 넘쳐난다."라는 언급을 한 부분에 아프리카 아동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교실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넣었다.

출처: 을유문화사 페이스북 페이지 

나는 해당 출판사의 페이스북 관리자에게 왜 이 사진을 넣었냐고 문의했다. 내가 이해하기로 그 저서는 일본인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라 그 작가가 직접 아프리카를 언급했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몇시간 뒤, "생활&교육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는 환경 속 사진을 활용한 것뿐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화가 많이 난 나는 이 사진을 구글검색했다. 그리고 단 5분만에 이 사진의 원 출처로 보이는 페이지를 찾아냈다(pixabay라는 사진 판매/공유 사이트의 한 사용자가 그 사진을 올린 페이지다). 원 출처에는 국가 언급 없이 '아프리카' '아이들', '슬픔' 등의 태그만 있었고, 이 아이들이 혜택을 받는지 안받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어느나라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단지 '아프리카 아이'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생활&교육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는 환경"에 살고, "행복한 세상이 아닌" 곳에 사는 것으로 취급한 뒤, 책 홍보에 이용하는건 정말 게으르고, 유해한 행위다. 이후 메신저를 통해 직접 대화를 시도했지만,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수정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좋다.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으르게 편견에 편승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고 따라서 하나의 이미지로 대표될 수 없으며, 박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여느 나라처럼 변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변화는 진보를 의미한다.

글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뽑기 위해서, 남을 비판하기 위해서,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아프리카'를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언급하고 싶고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검색이라도 해서 맥락을 살펴보자. '아프리카'는 그렇게 도구로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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