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름 4대 보험 되는 직장경력이 아프리카에서 2년, 한국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한 1년 반쯤 되는데, 이상하게 '제대로 된' 직장생활로 잘 안 쳐주는 것 같다. 남들의 평가도 평가지만,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이 길의 끝에는 뭐가 있는지 알고서 걷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점 찍듯 살다 보니, 나는 그냥 의미 없는 점만 찍고 있고, 나 빼고 모두 행복을 향해서 성공을 향해서 혹은 '정상적인 삶'을 향해서 "모두가 전력 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조해지곤 한다. 간혹 내가 이걸 하고 나서 저걸 하고 그러고 또 뭐시기를 할거라고 "다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사실 그거 진심 한 5% 자기 위안 45% + 대외설명용 50%다. 자꾸 설명을 요청받다 보니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그럴싸하게 말해버리곤 하는데, 자꾸 말하다 보면 나도 속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걸 의도했던 것처럼. 모르겠다. 일단 이건 두고 봐야 알겠다.
얼마전에 읽은 책의 저자, 김보통씨는 "진급에 미끄러지지 않고 계속 버틴다면, (중략) 부장이 되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끔찍한 일이었다."라고 하고, 누군가는 하고 싶은 거 하는 내가 부럽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안 좋은 거고, 이게 그렇게 좋은 거라면 누구나 이걸 하고 싶어했겠지, 근데 이 직업은 그만큼 인기 많은 직업은 아닌것 같다. 내가 잘은 몰라도 이쪽 저쪽 제 3쪽 등등 다 장단점이 있고, 가치관에 따라 그게 더 좋을 수도 이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냥 '대기업을 그만두고 "지금 불행해지지 말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읽어볼 마음도 안 생겼을 것 같다. 대기업 문턱에도 안 가본 나에게 마치 대기업을 그만둔 것이 대단한 일인 양 풀어놓는 이야기는 흥미도 없고, 심지어, 아마도 그런 '주류의 삶'을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자격지심이겠지만, 자신을 그런 '대단한 곳'을 때려친 사람이라며 거들먹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산 것은, 일단 그런 스토리인지 몰랐기도 했고, 잘 안 읽히는 어려운 책이 있어서 가벼운 웹툰을 보고 싶었는데, 당연히 김보통씨 이름이 있길래 웹툰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고 나서 몇 페이지 넘어가도 만화가 안 나오길래 아차 했다. 지금 보니 표지에 당당하게 '에세이'라고 적혀있는데, 왜 살 땐 못 봤는지 모르겠다. e북은 책을 만지지도, 뒤적여보지도 못하다 보니, 무슨 책인지 직관적으로 감이 잘 안 온다.
잘못 샀지만, 나는 이 책을 이틀 만에 끝냈다. 일단 대기업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그렇게 대단하게, 비중있게 그리지 않아 좋았다. 그 이후의 고립되고 궁상맞은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무진장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너무 익숙한 맛이라 그다지 감흥도 안 나는 대용량 새우깡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인데, 자꾸 손이 가요 손이가서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페이지가 거의 다 끝나갈 때 '엥? 이게 다야?'싶었는데, 행복하단 것도 아니고, 아직 불행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스펙타클하면 오히려 이상했겠다고 금세 이해했다.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는 김보통씨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고, 많은 위안도 얻었다. '제가요, 이렇게 저렇게 남들이 불행해질 거라는 삶을 좀 살아봤는데요, 아직까진 꽤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그냥 홀라당 옮겨놓으면 책을 안 살까 봐 못 옮기겠다. 나는 김보통씨가 책도 많이 팔고, 웹툰도 많이 팔아서 잘먹고 잘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