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괜찮을까? 남반구를 스쳐 가는 사람들을 위한 소셜 미디어 가이드 (SAIH)

봉사자와 여행자를 위한 소셜미디어 가이드 "How to Communicate the World"는 SAIH (Norwegian Students’ and Academics’ International Assistance Fund)가 모금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을 빈곤과 발전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시작한 Radi-Aid 캠페인의 하나로 제작되어 급증하는 봉사자와 여행자가 "해외에서의 경험을 기록하는 과정에서의 존엄성 침해를 방지하고 사생활 보호권을 존중할 수 있도록"하는 원칙들을 제시한다. 이 캠페인은 2013년부터 매년 최고의 개발 모금 광고와 최악의 모금 광고를 선정하며 빈곤 포르노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홈페이지: http://www.rustyradiator.com/





따옴표 안에 적힌 내용은 가이드북에 제시된 원문을 번역한 부분이고, 나머지는 내 의견이다.


제1원칙: 존엄성을 존중하기 (Promote Dignity)

"어떤 내용을 소셜 미디어에 올릴 때, 여러분들은 자신의 실시간 전기(Biography)의 편집장이 되는 동시에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됩니다. 몇몇 봉사자는 이 기회를 자신을 그날의 슈퍼히어로로 보이게끔 보이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쓰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그런가요? 이게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인가요?"

"여행하며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삶의 기록은 이야기하기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국에서 소셜미디어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꽤 양심적으로 지켜줍니다. 그런데, 특히 서구 여행자들이 개발도상국에 갔을 땐, 이는 종종 무시됩니다."

 => 개인의 문제, 서구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도 이 글을 읽고서 몇몇 게시물을 지웠고, 반성했다. 이 글을 읽기 전에도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며 '이래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은 꽤 했는데,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마음속 찝찝함을 자주 이겼었다. 그리고 많은 국제개발단체는 국내의 사회복지단체의 미디어 규정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사업 참여자의, 심지어는 관계없는 사람의 얼굴을 모금 및 홍보업무에 무분별하게 노출하고 있다. 사회복지단체는 참여자들의 얼굴을 대체로 블러처리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길 하는 나도 이 문제에 있어선 결코 당당하지 않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잘 하자는 마음으로, 올해 예정된 사업소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과정에서 참여자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촬영 및 활용에 관해 서면 동의를 받을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단체와 참여자 간 권력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참여자가 어떤 강요도 느끼지 않고 동의 및 부동의를 선택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존엄성 침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아주 명백하게, 하지만 대다수는 미묘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존엄성 침해는 종종 소위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이라 불리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럽인이 아프리카를 '문명화(Civilize)'하기 위해 몰려왔던 식민지 시절의 것인데요, 포스트 식민주의의 맥락에서도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는 소셜미디어에서 여전히 눈에 띕니다. 어떤 아프리카 나라의 시골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크레파스나 사탕을 나눠주면서 자신을 영웅처럼 그린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인스타그램 '좋아요'를 받았건 여러분은 그 이야기의 영웅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과 교류하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도록 글 쓰고 올릴 책임과 권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관광상품이 아니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하고, 그들을 그렇게 다루는 것을 멈추어야만 합니다. 만약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를 피하고 싶다면, '절망적인', '절박한', '가난한' 그리고 다른 빈곤과 관련된 단어들을 피하세요."

"여러분이 영웅적이고, 고무적인 글을 쓰는 동시에 존엄성을 존중하고 백인 구원자가 되길 피하고 싶다면, 그것 또 가능하긴 합니다. 연구를 좀 하시고, 당신이 방문한 곳의 사람들이 그들의 공동체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다뤄보세요. 그들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진짜 영웅이니까요."
=> '그들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진짜 영웅(They are the true heroes in their story)'이라는 문장이 좋았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원조기관이나 국제개발 NGO 그리고 우리 '외국인'은 절대 주인공이 되려 하거나 되어선 안 된다. 변화를 만드는 진짜 주체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제 2원칙: 충분한 동의 구하기 (Gain Informed Consent)

"이 가이드를 읽고서 딱 하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그리고 소셜미디어나 다른 곳에 올려도 되는지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동의 구하기, 너무 당연하지만 대체로 무시되고 있다. 대부분 언어 문제로 소통이 쉽지가 않고, 소통되더라도 소셜미디어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예전에 출장팀이 왔을 때 직접적인 촬영 대상에게는 촬영 전후로 촬영 목적에 대해서(모금 및 홍보) 최대한 설명하려 노력했었지만, 홍보팀이 무작위로 찍는 주변 인물에게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통역 가능한 직원이 있었음에도 매우 어려웠다. 나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여기 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할 때 말고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을 땐 인물사진은 거의 찍지 않는다. 특별히 요청이 있으면 찍어주긴 하지만 대체로 찍지 않고, 혹시 인물사진을 찍었을 땐 사진 속 주인공이 원하면 인화를 해주었다. 항상 찍고 싶은 마음 나도 백분 이해한다. 나도 담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다. 하지만 매번 카메라를 꺼내진 않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동의를 구할 자신이 없었고 이 사람들이 나에게 쉽게 화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니까. 충분한 동의를 구할 수 없다면 찍지 않는 게 맞다. 심지어 배경이나 상황을 찍을 때도 카메라를 꺼내들고 한동안 내가 사진을 찍을 거라는 것을 충분히 표현한 후 촬영을 시작하곤 했다.

"우리는 대부분 동의 없이 사진이 찍히면 기분이 나쁘고, 사전 동의를 구하길 바랄 겁니다. 그러니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세요. 카메라를 꺼내기 전, 사진 속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고, 사진 찍는 것을 괜찮아하는지 확인하세요. 그들의 동의를 구하고, 만약 여러분이 소셜미디어나 다른 곳에 사진을 올리려고 한다면, 그 사실을 알리세요. 병원이나 다른 보건시설을 포함하여 취약한 사람이나 자존심이 상할 사진을 찍는 것은 피하세요. 여러분의 건강상태는 개인적인 것이니까 아마 여러분도 당신의 건강 정보가 어떻게 퍼지는지 통제하고 싶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기관의 봉사자로 여행 중이라면, 기관은 아마 언제 어떻게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을 겁니다. 읽고 따르도록 하세요. 그리고 여기 제시된 4가지 원칙은 당신에게 기대되는 아주 최소한의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 명심하시고, 당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변화를 만들어 나가세요. 만약 기관에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그들이 개선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독려하세요."
=> 아주 큰 기관이 아니면 미디어 가이드라인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이 가이드를 읽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할 일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사진을,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것은 우리가 잊고 있던 윤리적 딜레마를 떠올리는 가장 보편적인 예일 것입니다(당신을 따라 달려오는 귀여운 아이들, 얼마나 사진 찍기 좋은 기회인가요!). UN 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은 사생활의 권리와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신이 아이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함을, 사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설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의 부모, 부양자 혹은 보호자의 동의를 얻되 아이들의 의사가 무시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 KCOC(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바 있다.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황이지만 이 업계 홍보 및 모금 담당자를 포함하여 종사자들이 이 가이드라인만 지켜도 참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전 동의는 아동 및 보호자가 촬영자나 다른 누군가에게 간섭이나 유도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져야 하며, 촬영자는 이들에게 자신의 신분 및 촬영의 목적과 활용 계획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또한, 아동은 촬영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같은 원칙이나 "아동은 인터뷰 및 촬영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는가?"와 같은 체크리스트 항목만 지킬 수 있다면 상당히 윤리적인 사진 촬영 및 활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사람은 무언가를 바라고 사진 찍히길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하세요. 또한, 아이와 어른 사이에 권력의 불균형이 있다는 점도 명심하세요. 동의가 당신이 사진을 가지고 나중에 뭐든 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 이용권(Free pass)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여러분에게 달려와 사진 찍길 요청했더라도, 그 아이들이 소셜미디어에 사진이 공유되는 것에 대해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동의가 항상 필수인 것은 아닙니다. 군중을 찍을 때나 사람이 아닌 상황을 사진으로 담을 땐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될 수 있습니다. 보통 사진 속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면 동의가 필수는 아닙니다."



제3원칙: 나의 의도에 대해 고민하기 (Question Your Intentions)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우리의 의도가 선했을지라도,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우리는 완전히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이 문단도 좋았다. 목적은 결코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 목적이 의심스러운 것이라면 더더욱.

"여행을 시작하기 전이라도 스스로 이 여행을 왜 하는지 자문해보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인가요? 항상 아프리카 나라의 외딴곳을 여행하길 꿈꾸었고, 봉사로 가는 게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갭이어(Gap year) 동안 뭔가 의미 있고 도전적인 일을 찾고 있어서인가요?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을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이 여행의 주된 동기가 무엇인지 자문해야 합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선 조심스럽지만,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 해소를 위해선지 뭘 위해선지 도입한 각종 봉사단 제도로 인해 이국적인 삶을 꿈꾸며 이 일에 심각한 고민 없이 뛰어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도가 나쁜 것인지에 대해선 내가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런 사람이 남반구의 삶에 실망하면서 터뜨리는 불만이나,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해 내뱉는 이야기들이 어느정도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에 무언가 올릴 때도 자신의 의도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이것을 볼 누군가에게 나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내 이야기가 곡해될 수 있지는 않을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내가 무엇을 왜 올리는지 항상 자문하세요. 당신이 그 상황에 가장 관련 있는 사람인가요? 어떤 명분으로요? 이 게시물이 당신에게 사적인 이익이 되나요? 시간을 두고 왜 당신이 사진을 찍거나 게시물을 올리는지 고민해보세요. 그리고 좋은 의도, 예를 들면 여러분이 목격한 문제나 여러분이 봉사 활동하는 기관이 하는 일에 대한 인식개선이나 여러분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개인적 기부자를 늘리는 것 등은 누군가의 사생활이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는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제4원칙: 편견에 맞서 싸우기 (Use your change- Bring down stereotypes)

"'편견은 편견보다 세상이 더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힘을 잃습니다. 개인이 집단의 편견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될 때, 이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 ED KOCHI"

"여러분이 여행할 땐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어요. 1. 당신의 친구와 가족들에게 편견 가득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프리카'의 빈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외부인의 중요한 역할, 멸종 위기의 동물, 혹은 여러분이 머물렀던 '로컬 마을'에 관한 가정을 확인시켜주기(나쁜 선택) 2. 그들에게 미묘한 정보를 주기, 복잡함에 관해 이야기하기, 혹은 빈곤과 절망에 관한 일방적인 이야기 대신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만약 여러분이 소셜미디어에 뭔가 공유하고 싶다면, 이 기회를 아직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써보세요. 친구와 소셜미디어의 팔로워가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맥락 뒤에 깔린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 '아프리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따로 또 같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려 노력한다. 우리 한국인에게 어떤 K스러움이 있는 동시에 개인 각자의 특성이 있는 것처럼, 그곳에도 집단의 특성과 개인이 가진 특성이 공존한다고 생각해보려 한다. 근데 이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괜히 좀 과장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재밌는 부분만 이야기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맥락 설명을 하는 게 귀찮기도 해서 성급한 일반화를 해버리곤 한다. 그래서 아예 충분히 설명할만한 혹은 상대가 충분히 인내를 가지고 들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예 시작도 안 하고 대충 얼버무리곤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더라도 나의 경험이 매우 한정적임을 알리고 시작한다. 그럼 좀 재미는 없어 하는 것 같다.....

"Golden Radiator를 수상한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으세요, 그리고 보는 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게 사람들을 그려보세요. 안타까움이나 딴 세상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대신 상황, 감정, 그리고 연대와 연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해보세요.

"그곳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그들의 삶, 고향,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관해 물어보는 게 좋은 시작일 수 있어요. 그들이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소셜미디어 게재 전 체크리스트



- 자문하기. "이 글을 공유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 사진 속 사람이나 그 보호자에게 충분한 동의 구하기. 만약 당신이 사진을 찍는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다면 통역자를 찾기.
- 사진 속 사람들의 이름과 배경에 대해 알기.
- 사진 속 사람에게 인화된 사진 주기.
- 무분별하고 단순한 일반화하지 않기. 이름과 장소 등의 충분한 배경정보 포함하기.
- 다른 문화와 전통 존중하기.
- 자문하기. "내가 만약 이런 방식으로 묘사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 병원이나 보건시설 같은 취약하고 민감한 상황은 피하기.
- 자신을 이야기 속 영웅처럼 묘사하지 않기.
- 인식에 도전하기, 편견과 맞서기!




=> 다시 말하지만, 나도 이 이슈에 관해 깨끗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나아지고 싶다. 이 글을 읽어서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이 어디서 왔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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