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휴가 갔을 때, 프랑스 학자 세르주 라투슈의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세상을 바꾸는 탈성장에 관한 소론"이란 책을 사 왔다. 나름 '개발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히 성장, 발전, 개발 등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나의 가장 큰 의문은 항상 '이 성장은, 이 발전은, 이 개발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이다. 어찌 발전할수록 문제가 해결되긴 커녕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전하지 않아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책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일단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성장이 복지를 창출한다면 우리는 천국에 살고 있었을 거라고 속 시원히 말해준다.
제목도 마음에 들고, 많은 부분은 통쾌하기까지 했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건 예상외로 힘들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그의 앞선 저서인 "발전에서 살아남기", "탈성장의 도박"에서 주창한 탈성장 이론을 보다 심화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앞선 책들을 읽지 않아 어려웠던 건지, 생소한 분야라 어려웠던 건지, 프랑스사람의 저서라 어려웠던 건지,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어려웠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주를 제외하고 129페이지인 책인데 읽는데 꽤나 걸렸다.
다 읽고 나서도 사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확 와닿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가 경고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선 알 것 같고 꽤 동의하기도 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성장이나 발전에 중독된 사회이며, "성장을 위한 성장 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경제에 의해 흡수 합병된 사회"라고 불렀다. 이 성장을 위한 성장사회, 이 소비사회는 소비에 대하나 욕망을 창출하는 광고, 거기에 수단을 부여하는 대출, 제품 수명을 가속화하는 계획적 진부화에 의해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런 체제는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사실 새롭지는 않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경제적 '과잉 성장'이 생태계의 유한성이라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간다면 기후 변화로 인해 태평양의 섬나라들이 잠기고, 해안지역 도시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남반구를 북반구의 중고물품과 폐기물로 넘쳐나는 쓰레기장으로 만들 것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나의 큰 관심사 중 하나인 남반구-북반구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북반구가 남반구에 대해 막대한 생태학적, 정치적 부채를 지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닐뿐더러 남반구에서 성장 논리를 유지하거나 도입하는 것은 그 국가들을 더 서구화 시킬 뿐이며, 덜 채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예로 아프리카의 식량안보 이야기를 꺼낸다. "남반구 국가들에게 '식량의 자율권을 되찾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발전에 대한 대규모 공세가 전개되기 이전인 1960년대까지 식량 자족이 가능했다. 식민화, 발전과 세계화의 제국주의가 이러한 자족을 파괴했고, 매일 조금씩 더 의존을 심화시키지 않았던가. 산업 폐기물로 대규모로 오염되기 이전에 물은 수도꼭지가 있든 없든 대부분의 경우 들고 다니며 마실 수 있었다. 학교와 의료 센터는 문화와 보건 위생을 도입하고 보호하기 위하 좋은 제도들이 아닌가?".
그럼 왜 이런 짓을 반복하는가? 저자는 마지드 라흐네를 인용 "사람들이 '도움'이라고 계속해서 부르는 것은 가난을 낳는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지출일 따름이다. 그와 반대로 그 구조의 진짜 재산으로 망가진 희생자들은 자신들만의 열망에 부합하는 대안을 찾아내기 위해 세계화된 생산 체계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북반구의 남반구 개발 프로젝트를 비판한다. 개발업계가 참여자(혹은 수혜자, 기관의 철학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가진 그 사람들)들이 기존 체계에서 먹고살만하게 남는 것을 장려(농업의 비즈니스적 접근 독려, 직업 훈련, 창업 지원 등?)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정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개발업계가 의도하든 않았든 가난을 낳는 구조에 부역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정말 치열하게 따져봐야 한다. 업계에서 거의 마법의 단어로 쓰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그는 '지속 발전'에대해, 에르베 캠프를 인용하며 "간산히 기수를 돌리면서 이윤을 유지하고 습관의 변화를 피하게 해주는 것 이외에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 또한 바로 앞의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탈성장 논의에는 노동문제도 끼어든다. 성장이 늦춰지면 대규모 실업사태가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나누고 여가를 늘릴 것." "삶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고, 반면 고용 자체를 위해 고용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사회를 전혀 바꾸지 못하면서 좌절할 수도 있다."라고 답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인 "탈성장의 영토", "구체적인 유토피아로서의 탈성장"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는데, 마지막 부분이자 실현에 관한 내용인 "정치적 프로그램으로서의 탈성장"부분은 도저히 이해를 못했다. 그래서 아마 이 저자가 담고자 했던 내용의 약 반 정도, 혹은 그 이하를 이해한 것 같지만, 흥미로운 책이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알면서도 계속 부인하는 것들을 집요하게 들춰내 세계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을 하도록 해준다.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세상을 바꾸는 탈성장에 관한 소론.세르주 라투슈. 2007/2015. pp.184 |
제목도 마음에 들고, 많은 부분은 통쾌하기까지 했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건 예상외로 힘들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그의 앞선 저서인 "발전에서 살아남기", "탈성장의 도박"에서 주창한 탈성장 이론을 보다 심화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앞선 책들을 읽지 않아 어려웠던 건지, 생소한 분야라 어려웠던 건지, 프랑스사람의 저서라 어려웠던 건지,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어려웠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주를 제외하고 129페이지인 책인데 읽는데 꽤나 걸렸다.
다 읽고 나서도 사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확 와닿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가 경고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선 알 것 같고 꽤 동의하기도 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성장이나 발전에 중독된 사회이며, "성장을 위한 성장 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경제에 의해 흡수 합병된 사회"라고 불렀다. 이 성장을 위한 성장사회, 이 소비사회는 소비에 대하나 욕망을 창출하는 광고, 거기에 수단을 부여하는 대출, 제품 수명을 가속화하는 계획적 진부화에 의해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런 체제는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사실 새롭지는 않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경제적 '과잉 성장'이 생태계의 유한성이라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간다면 기후 변화로 인해 태평양의 섬나라들이 잠기고, 해안지역 도시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남반구를 북반구의 중고물품과 폐기물로 넘쳐나는 쓰레기장으로 만들 것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나의 큰 관심사 중 하나인 남반구-북반구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북반구가 남반구에 대해 막대한 생태학적, 정치적 부채를 지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닐뿐더러 남반구에서 성장 논리를 유지하거나 도입하는 것은 그 국가들을 더 서구화 시킬 뿐이며, 덜 채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예로 아프리카의 식량안보 이야기를 꺼낸다. "남반구 국가들에게 '식량의 자율권을 되찾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발전에 대한 대규모 공세가 전개되기 이전인 1960년대까지 식량 자족이 가능했다. 식민화, 발전과 세계화의 제국주의가 이러한 자족을 파괴했고, 매일 조금씩 더 의존을 심화시키지 않았던가. 산업 폐기물로 대규모로 오염되기 이전에 물은 수도꼭지가 있든 없든 대부분의 경우 들고 다니며 마실 수 있었다. 학교와 의료 센터는 문화와 보건 위생을 도입하고 보호하기 위하 좋은 제도들이 아닌가?".
그럼 왜 이런 짓을 반복하는가? 저자는 마지드 라흐네를 인용 "사람들이 '도움'이라고 계속해서 부르는 것은 가난을 낳는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지출일 따름이다. 그와 반대로 그 구조의 진짜 재산으로 망가진 희생자들은 자신들만의 열망에 부합하는 대안을 찾아내기 위해 세계화된 생산 체계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북반구의 남반구 개발 프로젝트를 비판한다. 개발업계가 참여자(혹은 수혜자, 기관의 철학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가진 그 사람들)들이 기존 체계에서 먹고살만하게 남는 것을 장려(농업의 비즈니스적 접근 독려, 직업 훈련, 창업 지원 등?)하고 있는지 아니면 진정 불평등한 체제를 타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개발업계가 의도하든 않았든 가난을 낳는 구조에 부역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정말 치열하게 따져봐야 한다. 업계에서 거의 마법의 단어로 쓰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그는 '지속 발전'에대해, 에르베 캠프를 인용하며 "간산히 기수를 돌리면서 이윤을 유지하고 습관의 변화를 피하게 해주는 것 이외에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 또한 바로 앞의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탈성장 논의에는 노동문제도 끼어든다. 성장이 늦춰지면 대규모 실업사태가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나누고 여가를 늘릴 것." "삶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실업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고, 반면 고용 자체를 위해 고용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사회를 전혀 바꾸지 못하면서 좌절할 수도 있다."라고 답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부분인 "탈성장의 영토", "구체적인 유토피아로서의 탈성장"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는데, 마지막 부분이자 실현에 관한 내용인 "정치적 프로그램으로서의 탈성장"부분은 도저히 이해를 못했다. 그래서 아마 이 저자가 담고자 했던 내용의 약 반 정도, 혹은 그 이하를 이해한 것 같지만, 흥미로운 책이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알면서도 계속 부인하는 것들을 집요하게 들춰내 세계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을 하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