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악의 도시 브래드포드? / Chavs, Bradford and Huge Hypocrisy

요즘 내가 지내는 브래드포드는 옛날 양모산업이 한창 발전하던 시절, 이 근방에서 가장 잘 나가던 도시였고, 나라 안팎에서 대규모로 노동자 유입이 이어졌던 도시이다. 하지만 영국의 양모산업이 하락세를 기록하면서, 브래드포드는 급속도로 몰락했고, 당시 유입되었던 노동자들은 대형슈퍼마켓의 종업원 등의 저소득 직종으로 옮겨가거나, 실직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인구수로는 영국 도시중 여섯번째나되는, 그 큰 도시가 동력을 잃고 침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많은 문제에 직면한 브래드포드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않다. 

브래드포드 밖에서, 심지어 브래드포드 안에서라도 브래드포드를 영국 최악의 도시 중 하나라고 부르는 말들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얼마전에 개장한 쇼핑센터 뉴스가 전국뉴스를 탔다고, 오랜만에 브래드포드가 살인이나 마약이 아닌 좋은 일로 뉴스를 탄거라고 이야기했던 강사도 있었다 (그 사람은 맨체스터사람이었던가 그렇다). 브래드포드가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는 현상은 '차브'가 조롱거리가 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차브는 저소득 노동자들이나 실직자들을, 게으르고 무식하며, 복지혜택이나 받아먹으며 사회를 좀먹는 존재로 낮춰 부르는 용어인데, 이들에 대한 조롱이나 혐오, 그리고 공포가 미디어와 정치인들을 통해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오언 존스라는 사람이 비판적으로 분석해 책을 냈다. 오언 존스는 한때 '세상의 소금'이었던 자랑스런 노동자들이 대처리즘의 광풍에 무너져 지금의 조롱받는 신세로 전락했는지 추적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 엘리트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말하는 '차브'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데이비드 캐머런 같은 사람들이, 이들을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 '범죄성향이 높은 사람들'이라며 악마화되고, 더욱 더 짓밟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미디어, 정치에 자기 목소리를 낼 능력도, 대표도 가지지 못한 사회의 약자들이 조롱거리가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도저히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몰입해서 읽었다. 우리사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처럼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연장하고, 주변을 돌아볼 새 없이 사람들이 무한 경쟁에 내몰린다면 한국의 빈곤층이 '차브'로 재탄생하게되는건 시간문제다.
브래드포드에 사는게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최악의 도시에 산다느 느낌은 전혀 안든다. 때론 사람들이 말도 거칠고, 도시가 깨끗하거나 아주 안전한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싸고, 도시가 가진 엄청난 문화적 다양성이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거기에다가 약자들을 조롱하는, 스스로는 적절한(Proper)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적다는 것은 큰 장점 중 하나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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