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Should All Be Feminists, Chimamanda Ngozi Adichie, London: Fourth Estate, 2014. pp,65
We Should All Be Feminists(한글 번역판 제목: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가 2012년 영국에서의 한 TED 강연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발표한 것을 책으로 옮긴 에세이이다. 영문판 기준 65페이지로, 아주 짧고, 얇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쉬운'책이다.
작년 중순, '메갈리아'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드디어 '페미니즘', '여성혐오'가 열린 공간에서 언급되기 시작했고, 얼마전 있었던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과 그에 뒤따른 논란은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와 불평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리 사회에서 오가는 논쟁들을 지켜보며, 그동안 '나는 여성혐오하거나,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착각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었고, '남성'으로 교육받고 자라졌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혐오하고, 차별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행동을 하고, 특권을 당연하게 누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젠더 문제에 대해 더 알고싶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궁금해서 페미니즘이나 젠더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려 했었는데 한창 이런 고민을 영국에 지내면서 했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영어였을 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엄청 어려워서 첫번째 챕터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읽어보려 했던 책은 젠더 관련 개론서나 주디스 버틀러의 Gender Trouble, 톰 딕비가 엮은 Men Doing Feminism 등등 이다.
위에 언급한 책들에 비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의 We Should All Be Feminists정말 쉽다. 마치 친구가 들려주는 페미니즘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젠더 문제들을 예를 들어가며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일상적인 예를 보여주며, 허를 찌르는 의문을 제기한다. 뭔가 엄청 당연해 보이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아디치가 주로 나이지리아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자신이 그 두 나라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예로 드는데,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예를들자면 이런게 (안타갑게도) 아주 비슷하다.
"Recently a young women was gang-raped in a university in Nigeria, and the response of many young Nigerians, both male and female, was something like this: 'Yes, rape is wrong, but what is a girl doing in a room with four boys?'"
"최근 나이지리아의 한 대학에서 젊은 여성이 집단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젊은 나이지리아 남녀의 반응은 이런식이었어요. '그래, 강간은 나쁘지, 근데 그 여자애는 네명의 남자애들과 그 방에서 뭘하고 있었던거야?'"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 photo: Akintunde Akinleye |
아디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느껴지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디치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은 그러지 말라며 페미니스트는 '시집을 못가서 불행하고, 서양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고, 남자를 혐오하는 여성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참견에 아디치는 스스로를 '행복하고, 남자를 혐오하지 않는, 그리고 남자가 아닌 자신를 위해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신는 것을 좋아하는 아프리카인 페미니스트 a Happy African Feminist Who Does Not Hate Men And Who Likes To Wear Lip Gloss And High Heels For Herself And Not For Men '라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 조차 힘든 세상이다.
"what it shows is how that word feminist is so heavy with baggage, negative baggage: you hate men, you hate bras, you hate African culture, you think women should always be in charge, you don't wear make-ups, you don't shave, you're always angry, you don't have a sense of humour, you don't use deodorant."
"이런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느냐는 것이에요.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를 혐오하고, 브레지어를 혐오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혐오하고, 여성이 언제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도 안하고, 제모도 안하고, 항상 화가나있고, 유머감각도 없고, 데오드란트도 안쓴다고 생각해요."
젠더 문제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와도 많이 관련이 되어있다. 회사에서 높은 직책일수록 여성이 적고, 부부사이에서도 집안일은 여성의 의무로 되어있고, 어린시절 아디치의 경험처럼 학교에서도 반장은 남자애들이 도맡아 하는 등등의 불평등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디치는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예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I know a woman who has the same degree and same job as her husband. When they get back from work, she does most of the housework, which is true for many marriages, but what struck me was that whenever he changed the baby's nappy, she said thank you to him."
"나는 남편과 같은 학력에, 같은 직업을 가진 한 여성을 알고 있어요. 그 부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여느부부와 똑같이 여자가 집안일을 해요, 하지만 제가 정말 놀랐던 것은 남편이 아기 기저귀를 갈아줄때마다 그 여성이 '고맙다'라고 했다는 것이었어요."
일상 대화에서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고, 또 나도 모르게 하게된다.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나오는 수많은 이상한 남편들에게 MC들은 한목소리로 집안일을 좀 '도와'주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당연히 해야하는 일을 하는건데 왜 '도와준다'고 했을까?? 굉장히 이상했다.
지금은 과거 수렵, 채취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 신체적 특성이 사회적 역할과 직위를 정하는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 몇몇 남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럴때 딱 해줄만한 말이 책속에 있었다.
"I often make the mistake of thinking that something that is obvious to me is just as obvious to everyone else."
"나에게 너무 당연하게 보이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도 똑같이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하곤 한다."뭔가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면, 훨씬 나아질 수 있다.
얼마전 동생이 일본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가 탈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동생은 일본어를 무진장 잘한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번듯한 직업도 있었다.) 소문인지 공식적인 건지, 성매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 20대 후반 여성들에겐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잘 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미국 비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당시엔 그런가보다, 안타깝네 하고 넘어갔는데, 이 책에 아디치가 오래전 호텔에 혼자 묵게되면서 겪은 일화를 들어보니 아주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아디치는 혼자 나이지리아의 한 호텔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경비원이 입구에서 이름은 뭔지, 방번호는 뭔지, 누굴 만나러 온건지 등등을 캐물으며 귀찮게 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다른 남성들은 아무런 제지없이 입구를 통과했다. 당시 나이지리아에선 혼자 호텔에 들어가는 여성들은 성매매를 하러 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 외의 다른 여성들은 혼자 호텔방을 잡을 경제적 능력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디치는 이렇게 묻는다.
"Why, by the way, do those hotels not focus on the demand for sex workers instead of on the ostensible supply?"
"왜 이 호텔들은 성매매에 대한 수요는 생각하지 않고 표면적인 공급만 생각했을까요?"과거 나이지리아의 호텔에서 일어나던 일은 지금 전세계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여성들은 이런식으로 '잠재적 매춘부' 취급을 받으며 국경을 넘어 다른나라로 갈 '이동과 거주 자유'를 제약받고 있다. 그들을 막는 일본 정부나 미국 정부가 '수요'문제에 대해선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젠더의 문제는 어디에나 있다. 아디치는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남성과 더 행복한 여성들이 사는 세상을 위해선 우리의 아이들을 지금과는 다르게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자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떻게 해야 호감을 얻는지에 대해 너무나도 많이 듣는다고 한다. 화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반대 의견이 있어도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공격적으로 굴지 말아야 한다... 등등을 들으며 여자아이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사회가 바라는 '여성', 순종적인 여성으로 길러진다.
남자 아이들도 잘못 길러지고 있다. 아디치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남자아이들의 인간성(Humanity)을 억누르고 있어요. 우리는 남성성(Masculinity)를 너무나도 좁은 의미로 정의고 ,그 단단하고 작은 우리에 남자아이들을 가두'고 있다. 남자는 약한모습을 보이면 안되고, 두려워해선 안되고, 여성을 지켜야하고, 남녀관계에서 물질적인 부분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등등의 '남성성'이 남자아이들의 자아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남자아이들은 결국 그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여자아이들에게 해가 된다.
젠더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변화를 원하면서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데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아디치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페미니스트죠? 인권운동가 같은거라고 할 수는 없었나요?" 이에 아디치는 "물론 페미니즘은 인권의 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인권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와 관련한 특수한 문제들을 감추는 거에요."라고 대답한다. 젠더 문제는 보이지 않는 배제와 억압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해결책은 아마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아디치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남긴다.
"My own definition of a feminist is a man or a woman who says, 'Yes, there's a problem with gender as it is today and we must fix it, we must do better.' All of us, women and men, must do better."
"페미니스트에 대한 나의 정의는 남자든 여자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 오늘날에도 젠더에 대한 문제들이 있어, 우리는 이걸 고쳐야만해, 우리는 더 나아져야해.' 우리 모두, 남자와 여자, 모두 더 나아져야 합니다."
번역된 책도 만원이 채 안되는, 저렴하고 얇고 쉬운 책이니까, 혹시 젠더 문제에 대해 도통 이해를 못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 자녀나 조카가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고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 김명남 역. 창비. 96쪽. 정가 9,800원
암튼, 이 책을 읽고서 나도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그동안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선뜻 이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이젠 해야겠다. "나는 페미니스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