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일을 벌이기 좋은 방.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는 "꿈방"이라는 짤막한 글이 있다. (이 책의 산문들은 거의 다 짧고 좋다. 종이책도 있고 이북도 있다.) 그의 책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휴가 기간에 읽었으니,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그 내용이 흐릿하다. 이상하게 그의 글을 읽는데 그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암튼 이 "꿈방"이라는 글도 전체 내용은 지금은 흐릿해졌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사랑채의 방은 낮에 잠을 자기에 더없이 알맞을뿐더러 부모님이 있는 안채와 멀리 떨어져 있어 몰래 서툰 일들을 벌이기에도 좋았다. 그 방에서 나는 독재했다."

나는 아마 중학생 때부턴 내 방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대학 가서 잠깐 친구와 하숙방을 함께 쓴 기간과 군대에서 생활관을 공유한 기간을 빼면,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는 계속 나만의 공간을 독재하며 지냈다. 고시원방, 하숙방, 옥탑방... 듣기만 해도 작아지는 기분이지만, 나는 그 방들을 사랑한 방돌이였다.

내 방을 가진 덕에 나는 정말 '서툰 일들'을 많이 벌일 수 있었다.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감히 종이에라도 옮기지 못했을, 혹여나 새벽기분을 타고 옮겼더라도 날밝으면 누가볼까 조각조각 찢어버렸을 그런 시와 산문과 소설과 연구물과 홈페이지와 블로그와 계획과 그림과 뭐 그런 것들이 많이 탄생했고, 지금도 문득 튀어나와 그 찌질함에 헛웃음 짓게 한다.

하지만, 난 그 서툴렀던 독재의 시간이 좋았다. 나를 부러 둥글게 만들 필요도 없었고, 내가 보이고 싶은 것만 추려서 내가 보이고 싶은 곳에 내다놓을 수 있었고, 내가 되고 싶은건 뭐든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해볼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이의 시선아래 놓여있으면 서툴게나마 하기보단 그냥 가만히 있길 택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서툰 일들을 벌이기' 좋은 그 방들이 없었더라면(그 중에도 망원 옥탑은 서툰 짓거리를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나는 위에 말한 것들 중 그 무엇도 못했을 것이고, 내 감정과 탐구의 기록은 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서툴고 찌질한 시간은 아직 더 필요한 것 같다. 또 작당 하고, 희안한 글을 쓰고, 부끄럼에 몸서리치길 반복하다보면 언젠가 뭐하나 건질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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