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심은 나무. Photo: 우승훈 |
외국에 자꾸 사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내가 여행을 좋아할 거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사실 나에게 외국에 사는 것과 여행하는 것은 완전 다른 것이다. 나는 사는 것은 꽤 좋아하는데, 여행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사는 곳을, 나에게 익숙한 곳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엔 국내/국외가 의미가 없다.
고향에 갈 때도 고향을 여행하곤 한다. 우리 동네도 여행자의 마음으로 둘러보면 신선하고, 내가 우리 집을 떠난 지 10년이지만, 그래도 20년은 살았을 우리 집이 속한 그 도시도, 내가 아직 못 가본 곳이 참 많고 자꾸 바뀐다. 사람도 가게도 풍경도. 르완다에서도 그렇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이방인이고, 산책을 나서면 모든 곳이 여행지고 미지의 세계다. 국내/국외 구별이 없다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래도 해외에서 그곳의 '우리 동네'를 여행하는 게 더 재밌다. 앞서 말했듯 이방인이기 때문.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여행지에선 이방인이면서도 뜨내기 느낌이 너무 나고 그렇게 대우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어딜 가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숙소가 불안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아무 데서나 잘 자긴 하지만 잠자리가 자주 바뀌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정된 시간 내에 어떤 지역을 여행하기'라는 미션이 주어지면 즐긴다는 기분보다는 쫓긴다는 기분이 든다. 괜히 여기도 봐야 할 것 같고, 저기서 술도 한잔 먹어봐야 할 것 같은 기분, 남들 다 하는 거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긴 시간 지내면서 다니면 이런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더 좋다.
이번 계약이 끝나면, 한국에 가서 할머니 댁에 좀 있고 싶다. 할머니 댁은 지금 최고로 아름다운 벚꽃의 도시 진해의, 바닷가 작은 마을이다. 할머니랑 시간도 많이 보내고 싶고, 살며 여행하며 일없이, 책임없이 지내고 싶기도 하다. 막상 한국 가면 여러 압박에 시달려 그러기 쉽지 않겠지만, 지금은 꼭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