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된 연구소의, 역사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회원들의 추억이라고 하면 너무 소박한 그런 이야기들이 담긴 책. 여이연 창립 20주년 텀블벅 후원을 통해 얻어 르완다에 가져와 읽었다. 텀블벅 후원을 할 땐 '연구소 이야기라니 정말 재밌겠다!'생각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학술적인 연구소 이야기라기보다는 시민단체 이야기 같았다. 좀 짠내나고, 항상 돈이 문제인 걸 알면서도 자본에는 굴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 그냥 돈 버는 재주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돈과는 거리가 멀고, 진보와 성장보다는 버티기에 급급한, 그런 시민단체.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줄여서 여이연은 어느 대학에도 속하지 않은 재야 연구소이다. 회원들이 묘사한 여이연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여름을 나게 한 오래된 에어컨과 덜덜 떨리는 몸을 녹여주는 자그마한 히터를 끼고, 공부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다달이 내는 돈으로 운영하는" 작은 공간이기도 하고, 1997년 설립된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최초의 연구소"이기도 하고, 주된 테마로 "정신분석과 성노동"을 다루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 연구소의 세미나나 강좌에 참여해보거나 '다락방'으로 묘사되는 그 소박(?)하다는 공간을 방문해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 연구소에 대해 들은 바가 없어 이 책을 통해서만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추측해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따로 또 같이 페미니즘, 문화, 이론을 공부하고, 때때로 책을 내는 일종의 플랫폼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뛰놀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건 상상하면 아주 아름답고 꼭 해보고 싶고 그런데 역시 실행하는 건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아프리카 연구로는 그런 공간이 조만간 생길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스스로 하나 차려야 하나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동지'들이나 사회의 관심이 훨씬 많을 페미니즘이나 여성학 연구 분야에서도 이렇게 어렵다면 아프리카 연구로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여이연 회원들은 연구소가 버텨낸 것 자체로도 대단하다고 하면서 "연구소가 내놓은 이야기, 이론, 책, 글 이런 것들이 20년의 연구소가 가질 수 있는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다거나, 일종의 "자기 착취"를 통해 생존해왔다는 등의 아쉬움 진한 평가도 남겼다.
그럼에도 여이연은 멋졌다. 책에서 한 회원이 리베카 솔닛을 인용, "언어는 우리를 잇는다. 이야기는 삶을 구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곧 삶이다. 우리는 곧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했다. 여이연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언어'를 제공하고 언어를 끌어내려고 노력할 것 같다. 나에게 그들의 방식은 좀 구식인데, 달리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긴 하다. 여이연 사람들은 이 어려운 일을 20년이나 해오고 있다. 대단한 뚝심이라고 생각한다.
다락방 이야기: 페미니스트 연구공동체 여이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엮음. 2017. pp.302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줄여서 여이연은 어느 대학에도 속하지 않은 재야 연구소이다. 회원들이 묘사한 여이연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여름을 나게 한 오래된 에어컨과 덜덜 떨리는 몸을 녹여주는 자그마한 히터를 끼고, 공부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다달이 내는 돈으로 운영하는" 작은 공간이기도 하고, 1997년 설립된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최초의 연구소"이기도 하고, 주된 테마로 "정신분석과 성노동"을 다루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 연구소의 세미나나 강좌에 참여해보거나 '다락방'으로 묘사되는 그 소박(?)하다는 공간을 방문해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 연구소에 대해 들은 바가 없어 이 책을 통해서만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추측해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따로 또 같이 페미니즘, 문화, 이론을 공부하고, 때때로 책을 내는 일종의 플랫폼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뛰놀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건 상상하면 아주 아름답고 꼭 해보고 싶고 그런데 역시 실행하는 건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
아프리카 연구로는 그런 공간이 조만간 생길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스스로 하나 차려야 하나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동지'들이나 사회의 관심이 훨씬 많을 페미니즘이나 여성학 연구 분야에서도 이렇게 어렵다면 아프리카 연구로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여이연 회원들은 연구소가 버텨낸 것 자체로도 대단하다고 하면서 "연구소가 내놓은 이야기, 이론, 책, 글 이런 것들이 20년의 연구소가 가질 수 있는 수준에 못 미치"는 것 같다거나, 일종의 "자기 착취"를 통해 생존해왔다는 등의 아쉬움 진한 평가도 남겼다.
그럼에도 여이연은 멋졌다. 책에서 한 회원이 리베카 솔닛을 인용, "언어는 우리를 잇는다. 이야기는 삶을 구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곧 삶이다. 우리는 곧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했다. 여이연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언어'를 제공하고 언어를 끌어내려고 노력할 것 같다. 나에게 그들의 방식은 좀 구식인데, 달리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긴 하다. 여이연 사람들은 이 어려운 일을 20년이나 해오고 있다. 대단한 뚝심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