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3년 9월 8일 다른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1년 넘게 지난 여행기라, 지금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 1부 : 도도마는 도도해)
제 2부. Maisha ya kijijini (시골의 삶)
#1. 콘도아 Kondoa
이번 여행의 가장 주된 목적지는'하우비'입니다. 여행에 동행한 우리 사업장 매니져 다마스씨의 고향인데, 워낙 시골이라 도도마에서는 직행버스가 없고, 중간에 '콘도아'라는 도시를 거쳐 하루 단 두대 있는 버스를 이용하여 들어가야 합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도도마에서 탄 버스는 점심때 쯤 콘도아에 도착했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둘러 본 콘도아는 보기엔 인구도 별로 없고, 딱히 큰 시내를 가진 것도 아닌데, 거쳐가는 버스가 많고, 숙박시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탄자니아 중부와 북부의 교통을 중계하며 성장한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콘도아에 있는 다마스씨의 친척집에서 하우비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짜이를 한잔 먹었습니다. 평소와는 좀 다른 특이한 짜이를 대접받았는데
아주 프레쉬한 염소를 뜯는 호사를 누리며 배를 채운 나는, 살살 동네구경을 나가보았습니다. 수도시설이 없어 물펌프를 이용해 물을 떠다 쓰고, 펌프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들은 스와힐리어가 익숙치 않은, (하우비는 rangi라는 민족의 본관으로, rangi부족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삽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일상에서는 kirangi라는 부족어를 쓰다보니 탄자니아 공용어인 스와힐리어가 유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하우비에 오니, 딴세상에 온 것 같았습니다. 예쁘고 깨끗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과, 곳곳에 만발한 해바라기, 주렁주렁 열린 옥수수밭, 그 사이를 걸으니 마치 딴 세상에 온듯,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내가 도시중에 도시인 다레살람에서 보아온 탄자니아와는 완전히 다른, 마치 동화같은 하우비는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내가 거기 머물렀었단 사실이 꿈만같을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집 주위를 살살 돌아보고 오니, 집에 Dada(sister)가 장작을 패고있었습니다. Agy라는 이름의(아마 아그네스가 풀네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친한 사이끼리는 보통 앞 두글자로 많이 부릅니다.) 이 Dada는 일가 친척이라는데, Kondoa의 직업학교를 다니고, 방학엔 이렇게 하우비에와서 허드렛일을 한다고 합니다. 탄자니아에 있으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이렇게 일가 친척의 집에 보내어 집안일을 하는 대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아가씨가 장작을 패고 있으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패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시작과 동시에 거의 끝났습니다.(...). 보통 장작을 패면 좀 지름이 되는 나무를 가져다 쓰는데, 일단 나무가 너무 얇아 맞추기가 어려웠고, 뭔 도끼가 그렇게 무거운지 몇번 하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돌려줄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작을 다 팬 Dada Agy가 Duka(가게)에 맥주와 소다를 사러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나섰습니다. 물펌프에서 퍼 올린 물을 하루정도 가라앉혀 윗부분을 떠먹는 이곳의 식수가 영 미덥지 않아 생수라도 살 요량으로 따라나섰습니다. 그랬는데, 가게가 그렇게 멀줄은 몰랐습니다... 옥수수밭을 지나, 시내를 건너, 도착한 Duka엔 당연히 냉장고는 없고, 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펌프물을 마셨는데,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제 1부 : 도도마는 도도해)
제 2부. Maisha ya kijijini (시골의 삶)
#1. 콘도아 Kondoa
이번 여행의 가장 주된 목적지는'하우비'입니다. 여행에 동행한 우리 사업장 매니져 다마스씨의 고향인데, 워낙 시골이라 도도마에서는 직행버스가 없고, 중간에 '콘도아'라는 도시를 거쳐 하루 단 두대 있는 버스를 이용하여 들어가야 합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도도마에서 탄 버스는 점심때 쯤 콘도아에 도착했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둘러 본 콘도아는 보기엔 인구도 별로 없고, 딱히 큰 시내를 가진 것도 아닌데, 거쳐가는 버스가 많고, 숙박시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탄자니아 중부와 북부의 교통을 중계하며 성장한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콘도아에 있는 다마스씨의 친척집에서 하우비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짜이를 한잔 먹었습니다. 평소와는 좀 다른 특이한 짜이를 대접받았는데
이렇게, 고기와 홍차를 내왔습니다. 그래서 이 이상한 조합은 뭐지 갸웃거리면서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우갈리가 나오고 나서야, 아 아침 짜이가 아니라, 점심밥이었구나~ 했었습니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터미널로 이동하는데, 역시나 탄자니아 여행에선 결코 쉬운일이 없습니다. 갑자기 타고가던 택시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는 바람에 길 중간에 서서 스페어 타이어로 바꾸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이미 출발한 버스를 달려달려 주유소에서 잡았습니다. 3x3좌석이 빽빽하게 들어찬것도 모자라 입석 손님까지 들어차 미어터지는 버스를 늦게타다보니, 내 지정석으로 향하는 길이 험난했습니다. 빽빽히 들어찬 빅마마(???), 닭(???), 온갖 짐들을 뚫고 뒤편에 내 자리에 들어가는게, 버스를 찾아 뛰어간것 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버스 놓칠까 노심초사.... 놓치면 얄짤없이 다음날 버스를 타야했습니다. |
#2. 동화속 세상 하우비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산 넘고 강넘어 도착한 하우비! 내가 탄자니아에 지내면서 만난 그 어떤 시골보다도 시골인! (시골 오브 시골!!) 하우비에 들어서니 '아, 장난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전기 같은건 절대 있을것 처럼 보이지 않는, 집은 어디있는지 옥수수밭이 끝도없이 펼쳐진 하우비에 도착하니 약간 겁이 났었나봅니다.
매니져 뒤를 졸졸따라서 옥수수밭을 뚫고 도착한 매니져 부모님의 집.
할머니댁이 생각나던 하우비의 집 |
내가 신세질, 매니져의 고향집은 영락없이 우리네 시골집의 모습이었습니다. 소를 키우고, 마당엔 닭이 뛰놀고, 어두컴컴한 부엌에서는 화롯불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집, 거기다가 양철지붕까지!
하우비에 도착한 첫날은,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마당 멍석에 누워 별을 보며 보냈습니다.
이런 시골에도 비행기가 지나가네요. |
다음날, 버스이동이 힘들었는지, 느지막히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왠걸, 염소가 매니저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왔다고 염소를 잡는다고 하는데요, 살면서 이런 극진한 대접을 언제 또 받을까 싶었습니다.
이랬던 염소가, |
이렇게 변했습니다 ! (짠) |
아주 프레쉬한 염소를 뜯는 호사를 누리며 배를 채운 나는, 살살 동네구경을 나가보았습니다. 수도시설이 없어 물펌프를 이용해 물을 떠다 쓰고, 펌프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들은 스와힐리어가 익숙치 않은, (하우비는 rangi라는 민족의 본관으로, rangi부족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삽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일상에서는 kirangi라는 부족어를 쓰다보니 탄자니아 공용어인 스와힐리어가 유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하우비에 오니, 딴세상에 온 것 같았습니다. 예쁘고 깨끗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과, 곳곳에 만발한 해바라기, 주렁주렁 열린 옥수수밭, 그 사이를 걸으니 마치 딴 세상에 온듯,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내가 도시중에 도시인 다레살람에서 보아온 탄자니아와는 완전히 다른, 마치 동화같은 하우비는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내가 거기 머물렀었단 사실이 꿈만같을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집 주위를 살살 돌아보고 오니, 집에 Dada(sister)가 장작을 패고있었습니다. Agy라는 이름의(아마 아그네스가 풀네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친한 사이끼리는 보통 앞 두글자로 많이 부릅니다.) 이 Dada는 일가 친척이라는데, Kondoa의 직업학교를 다니고, 방학엔 이렇게 하우비에와서 허드렛일을 한다고 합니다. 탄자니아에 있으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이렇게 일가 친척의 집에 보내어 집안일을 하는 대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아가씨가 장작을 패고 있으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패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시작과 동시에 거의 끝났습니다.(...). 보통 장작을 패면 좀 지름이 되는 나무를 가져다 쓰는데, 일단 나무가 너무 얇아 맞추기가 어려웠고, 뭔 도끼가 그렇게 무거운지 몇번 하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돌려줄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작왕 Dada Agy |
먼길 다녀오니 뭔가 차려져있었습니다. 아침에 잡았던 염소의 내장으로 수프(수읍?)을 했다는데, 아... 이게 맛이 미묘했습니다. 원래 맛이 이런건지, 덜익은건지 먹다보면 갑자기 역한맛이 터져나왔습니다. 비위가 좋아서, 왠만한 음식은 다 맛있게 냠냠 먹는데, 탄자니아 먹방사상 최고 위기의 순간이 하우비에서, 프레쉬한 염소 내장요리에서 예상치못하게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안먹을 수 없어 겨우겨우 내 몫을 다 먹고는 맥주로 입가심을 했습니다. 앞으로 내장요리를 먹을 땐,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겠습니다.
겨우 위기를 넘기고, 마을 뒷산에 올랐습니다. 뒷산 꼭대기 풍경이 그렇게 멋있다고 매니져가 자랑을 해서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매니져의 초등학교 친구가 가이드를 자청해서 셋이서 길을 나섰습니다. 탄자니아 내륙에 위치한 하우비는 날씨가 한국이랑 비슷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한국을 오래 떠나있어서 한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었는지, 산을 오르며 한국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정상은 정말 매니져의 자랑처럼 엄청난 뷰를 과시했습니다. 타랑기레 국립공원부터 세렝게티, 아루샤까지 하우비로부터 북쪽에 있는 탄자니아의 넓은 국토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넓은 뷰를 볼때면, 그 광할함에 가슴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아아, 여기는 하우비 정상. 탄자니아 북부가 다 보인다는 보고. |
하우비 뒷산(산, 그대도 이름이 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구려)을 내려오는 길을 스펙타클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우리를 추적하는 비구름에서 벗어나기위해 거의 뛰듯이 산을 속보로 내려왔습니다. 산을 넘어오는 비구름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구르르르릉. 실시간으로 우리를 쫓아오는 비구름. |
하우비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내가 3일간 묵었던 방을 정리하고, 다같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시낸줄 몰랐는데 시내였던 하우비 시내를 지나 도착한 하우비 성당. 아마 하우비에서 가장 큰 건물은 이 건물이지 싶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와서 지었다는 커다란 성당을 중심으로 학교며 버스정류장이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온 동네사람이 다 모인것 같은 미사에 참석해서 눈치껏 미사를 보고나니 시간이 버스 출발시간이라 헐레벌떡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그 바람에 다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게되어 마음이 영 아팠습니다. 3일동안 정말 잘 대해줬는데... 출국 전에 사진 인화하고 편지라도 써서 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곤 나중에 사진인화를 해서 보냈습니다.)
#3. 안녕, 하우비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 하우비.
앞으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마음의 고향을 하나 더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