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의 민낯. 『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다음달이면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가끔 사람들이 왜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냐고 물어보는데, 애초에 미국 유학은 생각도 안해봤었다. 왜 생각안해봤었는지는 잘 몰랐는데, 한국의 지식사회를 지배하는 미국 유학파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경희대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를 읽으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한국 대학을 이루고 있는 많은 교수들은 미국에서 공부했고, 미국식 방법론이나, 미국의 연구 이론들을 국내 대학으로 수입해왔고, 그들 아래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연히 미국 학계를 동경하고, 존경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내가 미국 학계에 대한 동경이 없는 이유는, 첫째는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이고, 둘째라면, 내가 열심히 공부한 과목들의 선생님들이 미국 대학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은 사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장(場)이론'에 익숙하지 않다면 읽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 책인데, 나에겐 아주 친숙한 개념들로 가득한 책이었다. 학부시절 재미있게 배웠던 과목이 '법 사회학'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신 선생님이 피에르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기반으로 법과 국제정치,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 자본을 통한 구분짓기의 관계에 대해 잘 가르쳐주셨었다. 잘 소화하지 못한 내가 안타깝지만... 이분 뿐만 아니라, 인상깊었던 수업의 선생님들은 영국, 독일, 혹은 국내파 선생님들의 수업이었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미국스타일과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이런 영향으로 유학을 어디로 가느냐의 기로에서 별 고민없이 영국을 택했고, 지금도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영국의, 소위말하는 옥스브릿지같은 '탑스쿨'도 아니고, 세계 랭킹에서 높은 레벨의 학교도 아니지만, 나에게 어울리는 학교라고 생각하여 좋아하고 있다. 막상 가봐야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은 왜 사람들이 미국 유학을 택하고, 미국 유학파들이 대한민국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그들의 실상은 어떠한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연구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질적 종단연구인데, 1999년에서 2005년사이, 1단계 연구에서 미국 유학을 간 사람들 50명을 인터뷰 했고, 2011년에서 2014년에 이루어진 2단계 연구에서 앞서 50명중 20명을 포함한 80명의 유학파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로 구성된 연구이다. 

일단 한국인들의 미국 유학 사랑은 대단하다. 통계를 보니 '있으면 다 미국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12-2013년 미국 유학을 간 한국사람은 7만명이 넘는다. 단순히 숫자로는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미국 유학생이 많은 나라인데, 인구 대비로 따지자면 두 나라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숫자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미국유학을 사랑하는가.

김종영 교수의 연구를 보면 우리가 충분히 예상했던 내용들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영어'가 가지는 지위, 한국 대학이 낮은 수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미국 대학의 수준, 우리 사회의 심각한 학벌주의 등등,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미국으로 가고, 거기서 미국 유학파라는 타이틀을 얻어온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그들은 어떤 지위었던가? 그냥 외국인 대학원생이었다. 언어도 잘 못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약자였다. 그들은 재미있게도 한국 사회로 돌아오면 포식자가 된다. 미국에서야 어쨌든, 미국에서 가져온 학문적 자본들을 무기로 자신감을 가지고 활약한다. 미국에 남은 이들은, 극히 소수를 제외하곤 반쪽짜리 엘리트로 살아간다. 김종영 교수는 앞으로도 이 경향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타파하고, 한국 대학의, 한국 학계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세대교체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원래 '학문은 더럽다'라는 생각으로 버티며 차차 바꿔나가자는 결론을 제시한다. 


미국 유학파들의 이야기는 잊을만 하면 이슈가 된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신정아, 타블로, NS윤지, 미주 중앙일보의 '천재 수학소녀 이야기' 등등 여튼 미국에서 좋은 학교 나왔다는게 기사만 나오면 항상 시비거리가 되었다. 학력 위조 논란에서부터, 그 학교가 명문대니 아니니 논란까지... 난 그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미국 대학에 관심이 많은게 놀랍기만하다. 그리고 부끄럽기도 하다.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해냈느냐 보다, 어디 출신이냐가 더 중요한가보다. 언젠가 이런 미국 유학파들의 기득권이 무너지고, 한국대학이, 학계가 정상화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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